[토요판] 커버스토리
‘판반짜이 지원활동’ 신혜진씨의 눈
‘판반짜이 지원활동’ 신혜진씨의 눈
내가 ‘베트남 할아버지와 하니’를 처음 만난 건 지난 5월 초 수원에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분들을 애칭(‘하인’을 ‘하니’로)으로 부르게 될 것도, 이렇게 오래 인연을 이어가게 될 것도 알지 못했다. 가깝게 지내다 보니 이분들이 ‘명백한 유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법과 제도 안에서 유가족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난 11월 안산 세월호합동분향소에 찾아간 두 사람은 황당한 일을 겪었다. 늘 그 자리에 있던 딸의 영정이 사라졌는데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 몰라 허둥거려야 했다. 일반인 희생자 영정이 인천분향소로 옮겨진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분향소를 찾았던 것이다.
유가족임에도 세월호 관련 정보를 우연히 듣거나 언론 보도까지 끝난 상태에서 한발 늦게 알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의 진행 과정에서 사전에 의견을 물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안산은 세월호사건 유족들이 다수 살고 있는 곳이면서 다문화 특구이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 비해 도움 받기 수월하지 않겠는가 하는 판단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시간이 흐를수록 공무원들의 태도는 이분들을 세월호 유족이 아닌 잠재적인 ‘불법체류자’로 보는 게 아닐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냉정해졌다. 숙소를 제공했다고는 하지만 공식적인 생활비 지원이 없어 민간 차원의 후원에 의지해 생활했다. “저 사람들이 베트남이나 진도로 갔으면 좋겠다”는 말을 공무원들이 하더라는 소문까지 들려왔다.
안산시청 담당 공무원에게 세월호 유족에게 지급하는 긴급생계비 지원을 베트남 가족에게도 해줄 수 있는가 문의했으나 거절당했다. 거절 사유를 서면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더니 담당 공무원은 “서류를 만들어줄 수는 있으나 이런 식으로 무리한 요구를 하면 앞으로 불이익이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무엇이 무리한 요구이며 어떤 불이익인지 생각해봤다. 전자에 대해서는 그다지 무리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반면, 불이익 부분에서는 떠오르는 게 많았다. 당장 숙소를 제공하지 않거나 비자 연장을 해주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분들은 희생자 가족이면서, 동시에 실종자 가족이기에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므로 안정적인 생활비 마련이 시급했다. 어쩔 수 없이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해경보다 민간 어선이 더 많은 승객을 건져냈던 팽목항 현장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인천까지 분향하러 가기 어려워 안산 합동분향소에 영정을 두어도 되는지 정부 관계자에게 문의하자 “정부가 가족 문제에 끼어들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세월호 참사는 전적으로 가족의 일이거나 완전히 정부의 일일 수 없다. 특히 이 가족은 다문화가정이기 때문에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생겼을 때, 정부나 제3자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해 보인다. 정보를 얻지 못해 뒤늦게 소식을 들어야 한다든지, 장례 절차에서 소외되는 문제를 단지 언어의 장벽 때문이라고 하기엔 성의가 부족해 보이는 면이 자주 보였다.
만약 이분들이 미국이나 일본에서 변호사를 대동하고 온 유족이었다 해도 공무원들의 태도가 이러했을까? 외교문제로 비화될까 두려워서라도 예우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는 사람보다 돈의 가치를 우위에 두는 데서 비롯된 사건이다. 베트남 유족은 이와 동일한 이유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국가적 ‘흉사’이긴 하나, 아니 오히려 슬픈 일이기에 더욱 전향적인 태도로 제3세계에서 온 유족들을 극진히 대접하고 위로해야 한다. 다문화가정이 늘어나는 추세이기에 앞으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다. 국가 정책적으로 다문화가정이 한국 사회에 잘 흡수되도록 정착시키려는 만큼 그에 걸맞은 제도와 시스템을 갖춰야 할 것이다.
‘잘사는 나라, 한국’에 딸을 시집보낼 땐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했을 텐데…. 지연이 외할아버지의 소망은 세 식구의 장례를 잘 치러주고, 외손녀가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지는지 직접 확인하고 난 뒤 베트남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딸을 잃은 아빠가 딸을 위해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을 하려고 베트남 할아버지는 오늘도 힘겹게 하루를 ‘기다리고’ 있다.
신혜진 소설가
판반짜이 후원계좌 : 402-910932-02007 (하나은행, 예금주 Phan Van Chay)
신혜진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