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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구의원 개인연구실’ 예산 백지화…주민 참여의 힘

등록 2014-12-29 20:06수정 2014-12-30 09:06

지난 2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 구로구의회에서 주민들과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열어 의원실 신설 예산을 교육·복지예산으로 돌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주민 40여명은 이날 구의원들에게 장미꽃을 전달하고 구정 질의를 방청했다. 김희서 구로구의원 제공
지난 2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 구로구의회에서 주민들과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열어 의원실 신설 예산을 교육·복지예산으로 돌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주민 40여명은 이날 구의원들에게 장미꽃을 전달하고 구정 질의를 방청했다. 김희서 구로구의원 제공
구로구의회에서 신설 일방 추진에
김희서 노동당 의원 홀로 반대 운동
“학교 책상 바꿀 돈도 없는데…”
학부모·시민단체 적극적 동참
항의 전화·SNS·유인물 배포 나서
결국 예산 돌려 보육·급식에 쓰기로
구의원 15명보다 예산을 허투루 쓰지 않길 바라는 주민들 힘이 더 셌다. 3억4600만원을 들여 개인 사무실을 만들기로 했던 서울시 구로구의회가 줄기찬 반대운동에 계획을 백지화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이 돈은 어린이 보육과 안전한 학교급식 예산으로 돌아가게 됐다.

구로구의회가 개별 의원실 설치를 추진한 것은 지난 7월부터다. 구의원들은 의원총회를 열어 16명의 개인 사무실을 만들기로 했다. 구의회 운영위원회는 지난달 리모델링 공사, 가구·가전제품 구입 명목으로 3억4600만원의 예산안을 상정했다. 상임위 단위로 배정된 방을 쓰던 구의원 15명이 찬성했다. 초선인 김희서 의원(노동당)만 반대했다. 서울의 유일한 진보정당 소속 지방의회 의원인 그는 “학교 책상 바꿀 돈도 없는데 의원 방을 만드는 예산안에 절대 동의할 수 없다”며 ‘거리’로 나섰다. 김 의원의 지역구(오류·수궁동) 유권자가 3만여명인데, 이런 내용을 담은 의정보고서 1만5000부를 찍어 선거운동 수준의 활동을 벌였다.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열심이었다”는 그의 활동에 주민들도 동참했다. 최고의 홍보 수단은 학년별·반별 학부모 방, 마을공동체 방 등 그물망처럼 조직된 카카오톡과 네이버 밴드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였다. 천왕초등학교 교통누리봉사대 대표 김명숙(45)씨는 10여곳에 글을 올렸다. 아파트 우편함에 김 의원 의정보고서를 꽂아두기도 했다. 지난 2일에는 구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의원들에게 마음을 돌려달라며 장미꽃을 나눠줬다. 이어진 구정 질문을 방청하며 구의원들에게 ‘눈빛 레이저’를 쐈다. 김씨는 29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학생들을 위한 안전시설물을 갖춰달라고 구청에 찾아간 적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예산이 없어서 안 된다고 했다. 의원 사무실 만드는 데 돈을 쓰는 게 전혀 납득이 안 됐다”고 했다.

1월부터 고작 6건의 글이 올라왔던 구의회 누리집의 ‘의회에 바란다’ 게시판에는 예산안이 상정된 11월20일 이후 의원실 신설 반대 글이 30여건 올라왔다. 김명조 구로구의회 의장은 이에 대해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16곳에 개인별 의원실이 있고, 정책 연구개발과 조례 발의를 위해 공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은 필요하다”는 글을 올렸다. 또 “의원실 조성 예산을 복지에 사용하자는 김 의원의 의견은 주민들로 하여금 나라가 베풀어주는 것만 챙기는 또 하나의 복지 폐해의 위해성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항의 전화 등 민원이 빗발치자 찬성 의원 15명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결국 지난 12일 구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의원실 설치 예산이 사라졌다. 대신 ‘비서울형’ 민간어린이집 보육료 지원에 1억2550만원, 방사능 안전 급식 시범학교 운영 등에 1억5000만원, 노인정 개보수에 7000만원이 증액됐다.

주민들의 ‘단결’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주민들은 지난해 8000명의 서명을 받아 전국 최초 주민발의로 ‘방사능 안전 급식 조례’를 만들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의 불안을 ‘풀뿌리 정치’로 연결한 것이다. 혁신학교인 천왕초등학교 등굣길 안전문제 해소와 먹거리 안전을 위한 협동조합 활동 역시 참여의식을 끌어올렸다. 세월호 참사 뒤 주말마다 촛불집회를 했다. 김희서 의원은 “구의회 내에서는 ‘15 대 1’이었지만 참여하고 관심을 가져주는 43만명의 주민들이 있었기에 다른 의원들 마음을 돌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방사능 안전 급식 조례’ 운동에 참여한 황정임(44)씨는 “그전에는 ‘맡겨놓으면 잘해주겠지’ 했었는데, ‘주민들이 참여해야 하는구나’란 깨달음을 얻었다”며 “우리 동네는 한부모가정 등 복지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분들이 많은데, 당장 없어도 되는 의원실보다는 꼭 필요한 복지에 예산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오류동 아파트에서 ‘작은도서관’을 운영하는 서진미(46)씨는 “사무실이 필요했다면 주민들에게 먼저 물었어야 했다. 지역구가 넓지도 않은 만큼, 구의원들이 어떤 사안이든 주민들과 소통하면서 일하면 좋겠다”고 했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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