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31일 새벽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기각된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검찰이 ‘정윤회 국정개입 보고서’ 사건과 관련해 조응천(53)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49·구속 기소) 전 청와대 행정관이 꾸민 ‘자작극’이라고 결론을 내고, 5일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검찰은 지난달 31일 사전구속영장이 기각된 조 전 비서관을 공무상 비밀누설과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다. 그러나 조 전 비서관 쪽은 짜맞추기 수사라며 반발하고 있고, 야당도 특별검사가 재수사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이른바 ‘십상시 모임’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정윤회 보고서’가 청와대 내부 권력투쟁 과정에서 작성됐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 등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른바 ‘문고리 3인방’과 주도권 다툼을 벌인 조 전 비서관이 허위의 문건을 작성해 이들을 공격하려 했다는 것이다. ‘십상시 모임’이 비서실장 경질설의 근원지라는 ‘정윤회 보고서’의 내용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을 우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박지만 미행설’ 문건은 박지만 이지(EG) 회장에게 줄을 대기 위해 각각 작성됐다는 것이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이 박 전 행정관을 통해 ‘미행설 문건’을 전달한 뒤 박 회장을 직접 만나 정치권 진출을 상의했다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정윤회 보고서’ 내용은 날조라고 결론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보고서에 언급된 인물들의 휴대전화 통화내역 및 기지국 접속기록 분석과 자동차 운행기록 등을 통해 파악 가능한 동선을 추적해봤으나 정윤회씨와 ‘문고리 3인방’이 접촉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보고서 등을 통해 추적 가능한 단서는 모두 확인했으나, 번번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만 확인됐다. ‘문고리 3인방’을 견제하기 위해 일부러 외부 인사(정윤회씨)를 끌어넣어 허위의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은 박 경정이 서울지방경찰청 정보1분실에 보관했던 청와대 문건을 복사해 빼돌린 혐의(공무상 비밀누설)로 한아무개 경위도 함께 불구속 기소할 예정이다.
그러나 한달 넘게 이어진 수사 결과 발표에도 논란이 가라앉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조 전 비서관은 검찰이 들씌우고 있다며 혐의를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30일 영장실질심사에서 청와대 문건 17건을 직접 또는 박 경정을 통해 박 회장에게 건넸다는 혐의 내용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박 회장에게 청탁을 목적으로 접근하는 인사를 경계하라는 차원에서 일부 정보를 알려줬을 뿐이며, 청와대 문건 자체를 전달했다는 것은 짜맞추기 수사의 결과라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 회장을 접촉한 것도 대통령 동생인 그에게서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차원이 아니라 공직기강비서관이라는 “워치독(감시견)”으로서 대통령 친인척 관리를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검찰이 문건 유출의 동기로 청와대 내부의 권력투쟁을 제시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권력투쟁에서 밀린 쪽만 처벌하는 게 되고, ‘국정 농단’ 의혹에 대해서는 2013년 말 ‘십상시 모임’은 없었다는 이유로 털어주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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