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갈수록 높아지는 이혼율 탓
재산분할 문제 등 결혼 전 써둬
남성 45%·여성 63%가 “필요”
“재산 많거나 재혼일 때 문의많아”
재산분할 문제 등 결혼 전 써둬
남성 45%·여성 63%가 “필요”
“재산 많거나 재혼일 때 문의많아”
# 결혼 날짜를 잡은 김아무개(36)씨는 남자친구에게 고민 끝에 “가진 재산을 공개하자”는 얘기를 꺼냈다. 주변에서 결혼 전 서로의 재산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자친구는 뜻밖에도 아예 ‘혼전계약서’를 쓰자고 했다. 김씨는 “처음엔 ‘이 남자가 나를 못 믿나’ 싶어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요즘 같은 시대에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어 부모님에게 알리지 않고 혼전계약서를 썼다”고 했다. 혼전계약서에는 재산 관련 내용 외에도 결혼 뒤 생활수칙, 가사 분담에 대한 내용도 담았다.
# 이혼을 한 문아무개(51)씨는 등산 동호회에서 만난 여성과 재혼을 결심했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문씨는 “전처와 위자료 등 재산 관련 소송으로 힘들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변호사를 찾아가 조언을 구했다”고 했다. 둘 다 이혼 경험이 있기 때문에 재산 문제에 대한 시각은 비슷했다. 이들은 ‘결혼 전 재산은 각자 소유하고, 이혼하더라도 합리적인 선에서 재산을 분할한다’는 혼전계약서를 썼다.
이혼한 뒤 재산권 다툼 등을 우려해 혼전계약서를 쓰는 이들이 늘고 있다. ‘결혼을 꼭 계약관계로 봐야 하나’라는 인식은 여전하지만, 미국 할리우드 스타들이나 일부 재벌가에 한정됐던 혼전계약서에 대한 거부감은 상당히 누그러졌다.
7일 결혼정보회사 듀오가 지난 석달 동안 전국 20·30대 미혼 남녀 782명에게 ‘혼전계약서의 필요성’을 물은 결과, 422명(54%)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여성은 383명 중 242명(63.2%)이, 남성은 399명 중 180명(45.1%)이 필요성을 인정했다. 혼전계약서에 꼭 들어갈 내용으로는 ‘결혼 후 재산 관리’나 ‘이혼 후 재산 분할’ 등 민감한 내용이 많았다.
이인철 변호사(법무법인 윈)는 “이혼율이 높다 보니 두세달에 한번꼴로 혼전계약서 문의가 온다. 아직은 재산이 많거나 재혼하는 경우, 재벌이나 연예인이 많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준재벌급 2세가 평범한 가정의 여자와 결혼하는데, 불안한 남자 쪽 부모가 ‘이혼 뒤 재산을 하나도 안 주게 해달라’는 계약서를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식의 불공정한 내용은 법원에서 인정받을 수 없다”고 했다.
혼전계약서 상담은 많지만 실제 작성까지는 넘어야 할 벽이 많다. 양소영 변호사는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 혼전계약서 작성까지 이어지기는 쉽지 않다”고 했다. 법무법인 세종의 조정희 변호사는 “혼인 전 계약서에 들어갈 내용에 대한 상담은 많지만, ‘결혼은 계약이 아니다’라고 보는 한국적 문화에서는 아직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혼전계약서 외에 재산 관리 방법을 따로 법원에서 등기해두는 부부재산약정등기도 늘어나는 추세다. 대법원 자료를 보면, 2011년 11건, 2012년 16건, 2013년 26건, 지난해에는 28건이었다.
서영지 이재욱 기자 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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