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일어난 큰불로 4명 사망을 포함해 12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경기도 의정부시 도시형 아파트 화재 현장에서 11일 오전 소방대원들이 화재 원인 등을 조사하고 있다. 의정부/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안전처, 불연재 사용 의무화 추진
학계, 4년전부터 ‘화재 위험’ 경고
학계, 4년전부터 ‘화재 위험’ 경고
정부가 경기도 의정부 도시형 생활주택 화재에 대한 후속 조처로 외장재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미 수년 전부터 정부 안팎에서 화재에 취약한 외장재 문제가 제기됐는데도 소극적으로 대응해 ‘뒷북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민안전처는 12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긴급 현안보고에서 ‘불에 타지 않는’ 외벽 마감재를 사용하도록 하는 등 건축물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스티로폼 단열재를 덧대어 마감하는 드라이비트 공법이 화재에 취약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건축법 시행령은 30층 이상 고층건물과 상업지역 내 영화관 등 다중이용업소, 공장의 외부 마감재는 불연·준불연 재료를 사용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지만 다른 건축물에는 이런 의무 규정이 없다. 안전처는 앞으로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짓는 건축물은 외부 마감재료를 대리석 같은 불연재나 석고보드 등 준불연재를 쓰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드라이비트 공법(외단열시스템)은 높은 단열성에 비용이 저렴하고 공사 기간도 단축할 수 있어 오피스텔·학교 건물 등에 두루 쓰이지만, 화재의 확산 속도가 빠르고 유독가스가 많이 발생하는 것이 문제로 지적돼 왔다. 이 때문에 정부는 2009년 12월 건축법을 개정해 외벽에 가연성 마감재 사용을 제한하도록 했다. 하지만 1년 뒤 시행에 들어간 건축법 시행령은 불연·준불연 마감재 사용 대상을 영화관과 학원·산후조리원 등 다중이용시설과 공장으로 한정했다. 정작 드라이비트 공법이 많이 사용되는 주거용 건물은 규제 대상에서 빠졌다.
정부가 주거용 건물의 외벽 마감재의 규제에 나선 것도 화재 때문이었다. 2010년 10월 부산 해운대의 38층짜리 주상복합건물 4층에서 발생한 화재가 불이 쉽게 붙는 외장재를 타고 불과 20여분 만에 최상층까지 번지자, 당시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와 소방방재청(현 국민안전처), 민간 소방·건축전문가 등이 합동으로 전국 고층건물 안전관리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2011년 12월 30층 이상 고층건물도 불에 견디는 외벽을 시공하도록 건축법 시행령을 다시 고쳤다. 당시 정부는 “외벽 마감재 규제 강화에 따른 비용 부담은 크지 않은 반면, 규제로 인해 인명과 재산 등 건물 이용자들의 안전성이 확보된다”고 했다.
하지만 주거용은 30층 이하 건물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이른바 ‘타워링’식 고층건물 화재에 대비한 규제만 강화했다. 스프링클러 설치 규정 등을 피하기 위해 대부분 10층 이하로 지어진 30여만채의 도시형 생활주택은 여전히 규제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 셈이다. 이번에 안전처가 내놓은 안은 기존 건물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윤명오 서울시립대 재난과학과 교수는 “정부안은 이미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지어진 건물에 대한 대책은 되지 못한다. 기존에 지어진 건물들에도 외부 계단이나 줄사다리 설치, 외벽에 물을 분사하는 ‘드렌처’ 등 적은 비용으로도 안전을 담보할 수 있는 대책들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국민안전처를 따로 만든 이유가 그런 데 있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민세홍 가천대 소방방재공학과 교수는 “드라이비트 공법은 단열이 우선이다. 건물에 ‘기름’을 부어놓은 것과 마찬가지다. 에너지 절약도 중요하지만 안전이 우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 교수는 “기존 건물들 가운데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시공된 저층부와 고층부, 창문 쪽은 지금이라도 교체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박태우 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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