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이 마비되며 심한 고통이 따르는 척수성 근위축증을 앓으면서도 학업과 자활에 대한 강한 의지로 주변을 감동시켰던 남윤광(31)씨가 18일 세상을 등졌다. 남씨는 근위축증 환자에게 자주 나타나는 폐렴이 패혈증으로 악화돼 병원에 옮겨졌지만 1주일 만에 숨졌다.
19일 오후 서울 도곡동 강남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의 남씨 빈소에서는 학사모를 쓰고 밝게 웃는 모습의 영정이 문상객을 맞았다. 남씨의 대학생활은 입학부터 졸업까지 모든 것이 화제였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였지만 2003년 장애인 특별전형으로 서울대 사회과학부에 합격했다. 굽은 허리를 펴는 큰 수술을 세 차례나 받으면서도 7년 만인 2010년 졸업할 때는 전공인 경제학 외에 복수전공으로 사회복지학 학위까지 땄다.
하지만 뒷바라지하던 어머니가 2007년 암으로 세상을 뜨자, 남씨에게 세상은 더 높은 벽이 됐다. 얼굴 근육이 자신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전부였지만, 장애인 시설에 머물다 ‘진정한 자활’을 위해 2013년 서울 마포구에 작은 월셋집을 구해 팍팍한 세상으로 과감히 나왔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일상을 도와줄 활동보조인이었다. 정부에서 지원되는 중증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는 월 500시간에 그쳤다. 남씨의 친구들과 은사들은 그에게 추가로 필요한 활동보조서비스 220시간을 채워주기 위해 ‘윤광이의 한시간’이라는 후원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남씨도 온라인 미디어 모니터링 업체에 취직해 재택근무를 하며 활동보조인 비용에 보탰다.
남씨는 지난해 7월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비판하는 연극 <프릭쇼>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대학 친구인 김원영(33)씨는 “윤광이가 중증장애인 지원단체나 사회적 기업에 관심이 많았지만 ‘활동보조인을 구하는 것조차 너무 힘들다. 불편 없이 생활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전했다. 남씨가 2년 남짓 일했던 모니터링 업체의 박지현 과장은 “집에서 근무하면서 1주일에 한번씩 업무보고를 했다. 책임감도 있고 업무 성과도 좋았던 분”이라고 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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