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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크림빵 뺑소니’, ‘누리꾼 수사대’ 칭찬받을 만하지만…

등록 2015-02-03 14:16수정 2015-02-04 10:50

[더(The) 친절한 기자] 누리꾼 수사대의 ‘명과 암’
미궁에 빠질 뻔한 사건, 누리꾼들 덕에 실마리 찾았으나
‘과장 보도’로 오해 부르고 ‘엉뚱한 신상털기’ 부작용도
‘양날의 검’ 제대로 쓰이게 누리꾼도, 언론도 신중해야
이른바 ‘크림빵 뺑소니 사건’이 미궁으로 빠질 뻔하다가 용의자 자수로 막을 내리자 누리꾼들의 활약을 칭찬하는 목소리가 자자합니다. 누리꾼의 관심과 제보로 전국민적 관심이 일어났고, 이 때문에 뺑소니 사건으로는 이례적으로 수사본부까지 차려져 수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기 때문입니다. 숨진 피해자의 배우자라고 밝힌 분도 1일 인터넷 게시판에 누리꾼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은 글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섣부른 추측으로 사건과 관계없는 특정 차량 번호가 용의 선상에 오르고 무고한 시민이 용의자로 몰리기도 하는 등 ‘누리꾼 수사대’의 부정적 영향이 이번 사건을 통해 여지없이 드러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양날의 검 ‘누리꾼 수사대’의 명과 암을 차분히 짚어보겠습니다.

■ 누리꾼 수사대의 활약?

지난 10일 새벽 1시30분께 임신한 아내를 위해 크림빵을 사오던 강아무개(29)씨가 청주시 흥덕구 무심서로 로스텍 앞길에서 차에 치여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고 차량은 도주했고 경찰 수사는 미궁에 빠지는 듯했습니다.

수사 흐름은 27일 경찰이 청주시 차량등록사업소에서 용의 차량이 찍힌 CCTV 영상을 확보하면서 바뀌었습니다. 이 영상을 토대로 용의차량을 ‘윈스톰’으로 특정한 경찰은 28일부터 윈스톰 부품업체 탐문에 들어갔고 29일 용의자 허씨가 부품을 구입한 업체를 찾아냈습니다. 결제에 사용한 신용카드를 확보해 추적이 시작되자 압박감을 느낀 허씨가 자수하면서 수사가 마무리됐습니다.

언론들은 수사가 정상 궤도에 오른 공을 누리꾼들에게 돌렸습니다. 앞다퉈 ‘차량등록사업소 소속 청주시 공무원이 포털 뉴스에 ‘우리도 도로변을 촬영하는 CCTV가 있다’는 댓글을 달았고 이걸 본 경찰이 CCTV 파일을 분석해 용의차량을 윈스톰으로 특정할 수 있었다’고 보도한 것입니다.

경찰이 CCTV 영상을 발견하기 하루 전인 26일 오후 4시10분 청주시 차량등록사업소 전병선 팀장이 인터넷포털 ‘네이버’에 올라온 사건 관련 기사에 “차량등록사업소에 CCTV도 있는데 한번 재생하여 보는 것은 어떤지요? 도로를 비추고 있어서 찾을 수 있을 듯하네요~~”라고 댓글을 단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작 경찰은 이 댓글의 존재를 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성백 청주 흥덕경찰서 교통경비과장은 2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댓글 3개밖에 달려 있지 않은 기사를 어떻게 봤겠느냐. 나중에 얘기를 듣고 수소문해서 찾아보니 그런 댓글이 있긴 있더라. 저희에게 제보로 들어온 게 아니라서 몰랐다”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30일 청주 흥덕경찰서 주차장에 모습을 드러낸 '크림빵 뺑소니' 사건 피의자 허모(37)씨의 차량 앞면. 허씨는 자신의 윈스톰 차량을 충북 음성군 그의 부모 집으로 옮긴뒤 차량 부품을 구입, 직접 수리했다. 연합뉴스
지난달 30일 청주 흥덕경찰서 주차장에 모습을 드러낸 '크림빵 뺑소니' 사건 피의자 허모(37)씨의 차량 앞면. 허씨는 자신의 윈스톰 차량을 충북 음성군 그의 부모 집으로 옮긴뒤 차량 부품을 구입, 직접 수리했다. 연합뉴스
김 과장의 설명을 종합하면, 26일 저녁부터 수사에 강력계 형사가 투입됐다고 합니다. 이들을 이튿날 사고 현장에 재점검차 내보냈는데 차량등록사업소에 도로를 촬영하는 CCTV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영상을 확보해왔다는 겁니다. 사건 초기에도 이 CCTV를 확인했지만 건물 내부만 촬영되는 줄 알고 확보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박세호 흥덕경찰서 서장은 29일과 30일 수사 발표에서 “가까운 곳의 화면을 미리 파악하고 용의 차량을 빨리 특정하지 못한 것은 저희의 불찰이다”라고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결정적인 증거는 경찰의 탐문 수사를 통해 확보됐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중고차 쇼핑몰 ‘보배드림’ 게시판에 한 회원이 ‘크림빵 용의자가 저희 사무실에서 부품을 사갔다’는 글을 올리자 ‘이 회원의 제보로 경찰이 부품업체를 잡아냈다’는 식으로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보도들 역시 사실이 아닙니다. 해당 글은 29일 밤 9시24분에 게시됐습니다. 경찰은 29일 낮 이미 부품업체를 특정했고 해당 부품을 구입한 신용카드를 추적중이었습니다. 게시된 글에도 ‘오늘 낮에 경찰이 다녀갔다’고 적혀 있습니다. 경찰이 사건을 수사하는 전과정을 언론에 알릴 수는 없습니다. 그런 경우 용의자도 실시간 뉴스를 도피에 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 도움 준 건 사실이나 ‘마녀사냥’ 여전

물론 누리꾼들의 적극적인 움직임이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준 건 사실입니다. 흥덕경찰서 수사팀이 지난 14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보배드림’ 게시판에 흐릿한 용의 차량 추정 영상을 올렸고, 이때부터 누리꾼들은 수백 건의 글을 올리며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이런 움직임은 ‘보배드림’ 등 커뮤니티를 주목하고 있던 언론을 통해 세간에 알려졌고, 시민들의 관심이 폭증하자 흥덕경찰서는 28일 이례적으로 수사본부를 발족해 강력계 형사들을 대거 뺑소니 사건 수사에 투입했습니다. 12명이던 수사팀이 29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이때 추가 투입된 강력계 형사들이 결정적 CCTV 영상을 찾아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누리꾼들의 역할이 작았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누리꾼들이 엉뚱한 차 번호를 추정해내 수배 명단에 올리는 바람에 ‘마녀사냥’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애초 경찰이 BMW를 용의 차량으로 특정한 잘못된 사고 영상을 제공했기 때문이긴 합니다. 그러나 누리꾼들은 차량 번호를 추정한 뒤 해당 BMW 소유주의 블로그에 ‘죽는다 잡히면’, ‘넌 X됐다’ 등의 글을 무수히 달면서 용의자를 범인으로 확정하고 비난을 쏟아 부었습니다. 블로그 주인의 전화번호까지 공개한 누리꾼도 있었습니다.

29일 밤 11시 용의자 허씨가 자수하자 블로그 주인은 30일 0시33분 글을 올렸습니다.

“용의자가 확인되었다니 정말로 다행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저를 비롯한 BMW 차주분 많은 피해를 받은 건 사실입니다. 발신번호 표시 제한 전화, 익명 카카오톡, 문자 메시지, 블로그 댓글, 보배드림 댓글, 각 방송국 기자분들의 전화와 업체 방문까지…이루 말할 수 없는 스트레스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혼자만의 고통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무엇보다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던 사람입니다. 대한민국 네티즌의 힘…함께 도움 주며 함께 힘쓰는 모습 정말로 대단한 것 같습니다. 또한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법적인 대응, 고소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습니다. 벌써부터 고소 얘기가 올라와서 의사 표현을 전달합니다. 더 이상의 피해 보시는 분이 없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누리꾼들은 이런 글이 올라오자 이젠 “대인배가 태어났다”며 블로그 주인의 ‘통큰 행보’를 치하하고 나섰습니다. ‘마녀사냥’을 하던 누리꾼과 “대인배가 태어났다”며 치하하는 누리꾼들은 얼마나 겹칠까요. ‘끝이 좋으니 다 좋다’고 넘어가도 되는 걸까요? 다행히 뒤늦게라도 용의자 차량이 찍힌 CCTV 영상을 찾았기에 망정이지 사건이 미궁에 빠졌다면 저 블로거는 어떻게 됐을까요? 그때도 ‘통큰 행보’를 보일 수 있었을까요?

불의에 대한 군중의 분노는 사회를 변화하는 데 있어 큰 동력이 되지만, 때로는 엄밀함을 잃고 섣불리 타오른 분노가 곧잘 ‘마녀사냥’으로 변질하기도 합니다. 시민으로서의 관심은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시스템을 통해 확증되지 않은 범죄를 두고 ‘누리꾼 수사대’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돌을 던지는 일은 삼가고 또 삼가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언론부터 ‘누리꾼 수사대’의 ‘활약상’을 보도할 때 더욱더 신중해야겠습니다. <한겨레> 역시 반성하고 주의하겠습니다.

이런 점이 피해자 유가족의 의연하고도 따뜻한 대처와 함께 ‘크림빵 뺑소니’ 사건이 한국 사회에 남긴 또 다른 교훈 아닐까요.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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