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자본의 행태를 감시한다는 시민단체 대표가 투기자본 대표한테서 수억원의 뒷돈을 받은 혐의로 체포됐다. 검찰은 이 시민단체 대표가 돈을 먼저 요구했다는 혐의를 잡고 구속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김후곤)는 유회원(65) 전 론스타코리아 대표가 법정구속됐을 때 선처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써주는 등의 대가로 8억원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장화식(52·사진) 투기자본감시센터 공동대표를 체포했다고 4일 밝혔다.
장 대표는 2011년 9월 재판을 받다 구속된 유 전 대표한테서 일회용 계좌로 8억원을 입금받은 뒤 ‘유 대표 개인의 형사처벌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의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3일 장 대표의 집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유 전 대표가 집행유예로 풀려나면 수억원을 추가 지급하겠다고 한 약정서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장 대표는 그해 7월 유 전 대표가 법정구속됐을 때 언론에 “무기징역을 선고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장 대표는 “(8억원은) 외환카드 해고자로 임금과 손해배상금을 정산해, 받아도 되는 몫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유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먼저 돈을 요구했고, 돈을 주면 선처를 요구하고 그렇지 않으면 처벌해달라는 집회를 계속하겠다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장 대표가 받은 8억원이 대부분 카드대금 등 개인적 용도에 사용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돈의 구체적인 사용처를 확인하기 위해 투기자본감시센터 관계자들에게도 출석을 요구했다.
유 전 대표는 2003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할 당시 매수 가격을 낮추려고 외환카드 감자설을 퍼트려 주가 폭락을 유도한 혐의로 2007년 기소됐고, 2012년 징역 3년형을 확정받아 지난해 만기출소했다.
장 대표는 외환카드 노조위원장 출신으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외환카드 합병 과정에서 정리해고됐고, 전국사무금융노조 부위원장을 지냈다. 그는 2004년 운영위원으로 투기자본감시센터 창립에 참여하면서 론스타의 불법행위, 정부 관계자들과의 유착 의혹 등을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이 단체가 이듬해 관련자 20명을 고발하면서 검찰의 수사가 개시됐고, 유 전 대표와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등이 기소돼 유무죄 판단이 엇갈리는 수년간의 재판이 진행됐다. 장 대표는 민주노동당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기도 했으며, 지난해 1월 안철수 의원의 창당 준비조직이었던 새정치추진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외환은행 매각으로 4조7000억원의 차익을 거둔 론스타의 ‘먹튀’ 논란을 주도하며 초국적 투기자본 감시 활동에 힘을 쏟아온 투기자본감시센터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체포 사실을 안 직후 징계위원회를 열어 장 대표를 파면했다. 이 단체의 이대순 공동대표는 “장 대표는 외환카드 부당해고자로서 손해배상을 받은 것이라고 항변하지만 고도의 공공성을 요구받는 시민단체 대표로서 있을 수 없는 행위를 한 것은 틀림없다. 우리는 장 대표 개인의 금품 수수와 관계없이 본연의 역할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노현웅 정환봉 이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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