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할인으로 회사정책 침해”
해고된 음료사 직원 5개월전 패소
“회사 매출 올리려 덤핑판매”
제과사 직원은 승소해 대조적
해고된 음료사 직원 5개월전 패소
“회사 매출 올리려 덤핑판매”
제과사 직원은 승소해 대조적
해태음료 한 지점에서 영업직으로 일한 정아무개(41)씨는 근무 1년6개월 만인 2013년 10월 징계해고됐다. 사유는 채권 손실 발생, 자료 조작, 문서 위조였다. 거래처 57곳에 회사 전산 시스템에 입력해놓은 표준가격보다 음료를 싸게 팔아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해태음료는 징계해고 두달 뒤 정씨를 상대로 손해액 3246만원을 배상하라며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9단독 최경서 판사는 지난해 9월 “정씨는 해태음료에 1623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가격 정책은 기업의 영업에서 근간을 이루는 핵심 요소인데 정씨가 과도한 할인율을 임의로 적용해 이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비용 부담 탓에 변호사 없이 ‘나홀로 소송’에 나선 정씨는 항소를 포기해 결국 이 판결이 확정됐다.
그런데 석달 뒤 비슷한 사건에 다른 판결이 나왔다. 서울서부지법 민사14부(재판장 이종언)는 지난해 12월 크라운제과가 자사의 전 영업사원 유아무개(35)씨 등을 상대로 과자 판매 대금과 이자 2억55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거래가 있는 것처럼 매출을 잡은 뒤 나중에 덤핑판매하는) 가상판매는 회사에 손해를 끼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회사의 재고관리 방침이거나 회사의 매출 실적을 올리기 위한 것”이라며 유씨의 손을 들어줬다.
크라운제과 판결 소식을 들은 정씨는 13일 “크라운제과 사건은 내가 해태음료에 당한 것과 같다. 석달 만에 이렇게 서로 다른 판결이 날 수 있느냐”고 허탈해했다. 그는 “당시 경쟁사 음료의 단가가 더 저렴했다. 회사가 제시한 판매 목표의 근사치라도 달성하려면 거래처에 더 저렴하게 제품을 공급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해태음료의 다른 영업직원도 회사의 실적 압박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했다. 4개월 동안 이 회사의 서울 강남 한 지점에서 일한 ㄱ(34)씨는 “매일 매출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싸게 공급하고 차액은 월급으로 채우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부모님도 그렇게 하면 뭐가 남겠느냐며 빨리 회사를 나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법 관계자는 “정씨가 본인 주장에 대한 입증이나 근거를 충분히 대지 못해 구체적으로 심리가 이뤄지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했고, 정씨는 “회사가 자료 제출을 거부해 매출 압박을 입증하기가 불가능했다”고 했다. 해태음료의 모기업인 엘지생활건강 관계자는 “정씨는 회사 매출이 아니라 개인의 이익을 위해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것”이라며 “회사가 목표를 달성하라고 정씨에게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없다”고 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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