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경기 안산시 원곡동 이주노동자 영상센터인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김이찬 상임역무원이 임금을 체불당한 캄보디아 노동자와 상담하고 있다.
설 맞은 이주노동자 상담소 ‘지구인의 정류장’
설을 이틀 앞둔 17일 오후 경기 안산시 원곡동 다문화거리에 있는 이주노동자 노동상담소 ‘지구인의 정류장’은 손님 맞을 준비에 분주했다. 설 연휴를 맞아 캄보디아 출신 ‘농축산 이주노동자’들이 몰려올 예정이기 때문이다. 설날 당일을 포함해 연휴기간에 일을 하는 대신 대체휴일 명목으로 하루나 이틀짜리 휴가를 받은 이주노동자들은 ‘친정’과도 같은 이곳을 찾아 고향 음식을 해 먹으며 명절 기분을 냈다. ‘차울치남’이라 불리는 캄보디아의 설날은 4월이지만, 다른 나라의 명절이 선사한 이틀의 휴식도 꿀맛이긴 마찬가지다.
경기 평택의 오이농장, 오산 버섯농장, 전남 목포 돼지축사에서 일했던 캄보디아인 ㄱ(29)씨는 한국살이 3년 만에 처음 명절 휴식을 얻었다고 했다. 그간 일했던 농장들은 모두 휴일을 주지 않고 일만 시켰다. 그는 “캄보디아 친구들과 함께 휴일을 보내게 돼 기분이 좋다”고 했다.
휴일·휴식 등 노동인권 사각지대
농축산 이주노동자 돕는 친정 역할
하루 이틀에 불과한 휴일이지만
“함께 모여 고국 음식으로 기분 내”
비닐하우스 다큐 ‘신전원일기’ 계획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상임역무원’으로 일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김이찬(49)씨는 “명절 때마다 농축산 이주노동자들과 농장 사장 사이에 갈등이 불거진다. 자기들은 연휴 내내 가족들과 명절 기분을 내면서 이주노동자들에게는 하루나 이틀의 휴식도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김 감독은 전국 곳곳의 고용노동센터를 돌며 체불임금과 노동조건 관련 진정을 돕고 있다. 그가 독학으로 배운 캄보디아말도 이제는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을 정도다. 4년 전 강원도 양구의 한 농장에서 농장 사장의 횡포로 쫓겨나듯 이곳을 찾은 캄보디아 출신 농축산 이주노동자 10여명이 ‘지구인의 정류장’을 임시 거처로 삼기 시작한 뒤, 농장 사장의 횡포로 쫓겨나거나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이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지금도 20~30명이 머물고 있다. 농축산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를 보면, 농축산 이주노동자의 월평균 노동시간은 283시간에 이르지만 휴일은 고작 2.1일인 것으로 나타났다. 농장주가 사업장 이동을 허가해야만 다른 곳으로 이동이 가능한 탓에 ‘현대판 노예제’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 감독이 가장 문제 삼는 것은 농축산 노동자에게는 근로시간·휴식·휴일 보장 규정을 제외하도록 한 근로기준법 조항(63조)이다. 김 감독은 “이 때문에 한달에 이틀 쉬며 월 350시간 노동을 하고도 월급이 110만원뿐인 말도 안 되는 근로계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김 감독은 전날 경기 평택지방고용노동청에 버섯농장에서 일하던 농축산 이주노동자의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하라는 진정을 냈다. 김 감독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24시간 온도·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버섯농장은 식물 재배·채취와 관련 없는 ‘제조업’이기 때문에 제조업 노동자에 맞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근로기준법 농축산업 예외조항에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초과근로수당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감독은 최근 이주노동자들이 스마트폰으로 자신이 일하는 논과 밭, 비닐하우스 등 작업장과 일하는 모습을 찍는 <신전원일기>라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계획하고 있다. 한국인의 밥상을 책임지는 이들의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김 감독은 “설날 차례상에 올라온 음식 중에도 이주노동자들이 키운 것이 많을 것이다. 우리 먹거리가 어떤 사람들의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지는지 알았으면 한다”고 했다. 한국에는 2만여명의 농축산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글·사진 안산/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농축산 이주노동자 돕는 친정 역할
하루 이틀에 불과한 휴일이지만
“함께 모여 고국 음식으로 기분 내”
비닐하우스 다큐 ‘신전원일기’ 계획 ‘지구인의 정류장’에서 ‘상임역무원’으로 일하는 다큐멘터리 감독 김이찬(49)씨는 “명절 때마다 농축산 이주노동자들과 농장 사장 사이에 갈등이 불거진다. 자기들은 연휴 내내 가족들과 명절 기분을 내면서 이주노동자들에게는 하루나 이틀의 휴식도 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김 감독은 전국 곳곳의 고용노동센터를 돌며 체불임금과 노동조건 관련 진정을 돕고 있다. 그가 독학으로 배운 캄보디아말도 이제는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을 정도다. 4년 전 강원도 양구의 한 농장에서 농장 사장의 횡포로 쫓겨나듯 이곳을 찾은 캄보디아 출신 농축산 이주노동자 10여명이 ‘지구인의 정류장’을 임시 거처로 삼기 시작한 뒤, 농장 사장의 횡포로 쫓겨나거나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이들이 삼삼오오 모이기 시작했다. 지금도 20~30명이 머물고 있다. 농축산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를 보면, 농축산 이주노동자의 월평균 노동시간은 283시간에 이르지만 휴일은 고작 2.1일인 것으로 나타났다. 농장주가 사업장 이동을 허가해야만 다른 곳으로 이동이 가능한 탓에 ‘현대판 노예제’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김 감독이 가장 문제 삼는 것은 농축산 노동자에게는 근로시간·휴식·휴일 보장 규정을 제외하도록 한 근로기준법 조항(63조)이다. 김 감독은 “이 때문에 한달에 이틀 쉬며 월 350시간 노동을 하고도 월급이 110만원뿐인 말도 안 되는 근로계약이 가능하다”고 했다. 김 감독은 전날 경기 평택지방고용노동청에 버섯농장에서 일하던 농축산 이주노동자의 초과근로수당을 지급하라는 진정을 냈다. 김 감독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24시간 온도·습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버섯농장은 식물 재배·채취와 관련 없는 ‘제조업’이기 때문에 제조업 노동자에 맞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근로기준법 농축산업 예외조항에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초과근로수당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감독은 최근 이주노동자들이 스마트폰으로 자신이 일하는 논과 밭, 비닐하우스 등 작업장과 일하는 모습을 찍는 <신전원일기>라는 다큐멘터리 제작을 계획하고 있다. 한국인의 밥상을 책임지는 이들의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김 감독은 “설날 차례상에 올라온 음식 중에도 이주노동자들이 키운 것이 많을 것이다. 우리 먹거리가 어떤 사람들의 땀과 노력으로 만들어지는지 알았으면 한다”고 했다. 한국에는 2만여명의 농축산 이주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글·사진 안산/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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