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을 맞아 부산의 독립운동가 최천택(사진) 선생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열린다. 추모행사는 부산 민주공원 주최로 다음달 1일 부산 동구 좌천동 옥성사에 있는 선생의 묘를 참배한 뒤 중구 영주동 민주공원 들머리 선생의 기념비 앞에서 열린다.
선생은 1896년 부산 동구 좌천동에서 태어나 부산을 중심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1920년 9월 박재혁 의사의 부산경찰서 폭탄사건에 힘을 보탠 일로 유명하다. 당시 부산경찰서는 독립운동가를 감시·연행·고문해 악명을 떨쳤으며, 폭탄사건으로 당시 경찰서장이 죽고 많은 경찰관이 부상을 당했다.
사건 뒤 선생은 박 의사와 함께 경찰에 붙잡혀 고문 등 모진 고초를 겪었다. 박 의사가 끝까지 단독범이라고 우겨 불기소 처분으로 풀려난 뒤에도 선생은 독립군 자금 모금과 청년·사회운동 등 독립운동에 힘쓰면서 해방 전까지 경찰에 모두 54차례나 붙잡혀 구금됐다.
광복 뒤에도 선생은 이승만 정부의 감시와 함께 ‘빨갱이’로 몰려 육군 특무대에서 고문까지 받았다. 선생이 “분단된 조국의 해방은 진정한 해방일 수가 없다”며 이승만 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했기 때문이다.
선생의 아들 최철(76)씨는 “1961년 11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주눅이 든 우리 가족은 독립운동가 집안이라는 자긍심을 누른 채 살아왔다”고 말했다.
선생은 2003년에야 건국훈장 애족장 서훈과 함께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 일본 고등계 형사들과 이승만 정부의 감시 때문에 집에 독립운동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자료가 없어 ‘주의 깊게 감시해야 하는 인물’로 분류된 일본 쪽 자료들을 찾아 뒤늦게 독립유공자로 선정됐다고 가족들은 전했다.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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