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헌재 재판관들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들어서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현행 형법 체계가 도입된 이후 줄곧 많은 사람들에게 ‘주홍글씨’의 낙인을 찍어온 간통죄가 폐지됐다. 시대가 변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이 결혼제도·성도덕 보호라는 전통적 명분을 누른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26일 간통행위를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한 형법의 간통죄(제241조)에 대해 재판관 7 대 2 의견으로 위헌을 선고했다. 헌재는 설립 이래 네차례 간통죄를 합헌이라고 결정했으나, 다섯번째 사건에서 결론을 바꿔 간통죄의 즉각 폐지를 결정했다.
‘위헌’ 의견을 낸 7명 가운데 박한철·이진성·김창종·조용호·서기석 재판관은 “성인의 자발적 성행위는 개인의 자유 영역이다. 성도덕에 맡겨야 할 내밀한 성생활 영역에 국가가 개입해 처벌하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자유를 침해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간통죄 존치론에 대해 “간통 처벌 비율, 사회적 비난 정도에 비추면 예방 효과는 거두기 어렵게 됐다. 부부간 정조 의무 및 여성 배우자 보호는 이혼 청구, 손해배상 청구, 재산분할, 자녀 양육 등에서 불이익을 부여해 달성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또 “간통죄 조항은 혼인제도 보호라는 공익을 달성하기 어려운 반면 국민의 성적 자기결정권 등 기본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고 판단했다.
역시 위헌 의견을 낸 김이수 재판관은 가정생활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한 배우자가 불륜을 저지르는 경우는 이후에도 혼인관계를 회복할 가능성이 있으므로 간통죄의 존재 의미가 있다고 봤다. 다만 장기간 별거 등으로 결혼생활이 사실상 파탄난 경우의 간통까지 처벌하도록 한 현행 간통죄 조항은 형벌의 과잉 행사여서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했다. 강일원 재판관은 “간통죄 처벌 자체는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고 해 사실상 합헌에 가까운 입장을 보이면서도 징역형만 선고하도록 한 처벌 내용 등이 명확성과 비례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위헌으로 결론을 냈다.
반면 ‘합헌’ 의견을 낸 이정미·안창호 재판관은 “간통은 가족공동체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 행위여서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의 보호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다. 사회질서를 해치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보는 법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간통죄 폐지는 성도덕의 최소한의 한 축을 허물어 사회 전반에서 성도덕 의식이 하향되고 성도덕 문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했다.
1953년 대한민국 형법 제정 이후 간통죄로 처벌받은 이는 10만여명으로 추산된다. 1985년부터 지난 1월까지 30년간 기소된 사람은 5만2982명(구속 3만5356명)이다. 이 가운데 마지막 합헌 결정이 난 2008년 10월30일 이후 간통죄를 범해 유죄가 확정되거나 재판이 진행중인 이는 3000여명이다. 확정판결을 받은 이들은 재심 청구를 통해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고, 재판이 진행중이면 공소기각 또는 무죄 판결을 받게 된다. 수사중인 사건은 종결 처리된다.
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단체연합·한국여성의전화는 함께 성명을 내어 “위헌 결정 한 것을 존중한다”면서도 혼인생활 파탄에 대한 책임 추궁을 민법 차원에서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단체들은 “결혼제도 파탄의 귀책사유가 있는 배우자에게 민법상 강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경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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