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강원도 춘천시 약사명동 약사리고개 정상. 다닥다닥 맞붙은 집과 잿빛 시멘트 담벼락 사이로 난 어깨너비 정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오르자 등대처럼 생긴 ‘망대’(사진)가 모습을 드러냈다. 망대에 오르니 후평동과 퇴계동, 근화동 등 춘천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망대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 건립됐다.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살아남아 80여년간 춘천시민들의 삶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망대와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영화로 재탄생했다.
춘천의 예비 사회적 기업인 ㈔문화공작소 ‘낭만’이 제작하고 영화 <나비> <아버지> 등을 연출해 로카르노 국제영화제에서 ‘젊은 비평가상’ 등을 수상한 문승욱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다큐멘터리영화 <망대>(Watch Tower)는 새달 12일 오후 4시 예술영화관인 ‘인천 영화공간 주안’에서 개봉한다. 인천에 이어 씨지브이춘천과 케이티엔지 상상마당 춘천, 몸짓극장, 춘천박물관 등에서도 상영할 예정이다. 영화 <망대>는 2030년에 살고 있는 주인공이 과거로 시간이동을 해 만나게 된 망대에 얽힌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망대는 춘천시내 화재 감시를 위해 건립됐다. 해방 뒤에도 소방서 직원들이 이곳에서 24시간 근무를 했다. 이만석 춘천시청 재난복구담당은 “건립 당시 목조건물이었는데 1970년대 현재의 벽돌 건물로 개축을 했다. 한때 춘천교도소 감시 초소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지금은 민방위 경보시설을 설치해 비상 상황을 시민에게 알리는 건물로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망대는 춘천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 가운데 하나가 됐다. 망대 골목은 양구 출신 박수근 화백이 머물며 막노동을 했던 장소이자, 천재 조각가 권진규씨가 3년 동안 머물며 하숙을 하던 장소로 유명하다. 옛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요즘은 사진 촬영 명소로 인기다.
하지만 망대는 철거될 신세에 놓였다. 이 일대가 재정비구역으로 지정되고 재개발조합까지 설립돼 아파트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홍정원 ㈔문화공작소 ‘낭만’ 대표는 “아련한 그리움과 추억을 담고 있는 옛것들이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빨리 사라지고 있다. 영화 <망대>가 옛것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