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오카항. 규슈/김일우 기자
제주올레길을 본따서 만든 일본의 15번째 규슈올레길 ‘아마쿠사·레이호쿠 코스’(전체 길이 11㎞)가 구마모토현 레이호쿠정에서 열렸다. 성이 있는 산과 바닷가, 일본의 전통가옥들이 즐비한 마을 등을 차례로 둘러볼 수 있는 코스다. 앞 부분은 오르막과 내리막 길이 많지만 뒷부분은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4~5시간이면 모두 걸을 수 있는 코스다.
지난달 28일 오전 10시 아마쿠사·레이호쿠 코스를 완주하기 위해 토미오카항에서 출발했다. 토미오카항은 도자기 원료로 쓰이는 아마쿠사 도석이 대량으로 나오는 곳이다. 방파제를 따라 30분을 걷다 보면 너비 2m가 채 되지 않는 산길로 들어선다. 높이가 10m나 되는 나무들이 양쪽에서 햇빛과 바람을 막아준다. 나무 사이를 지나온 파도 소리가 나지막하게 들려온다.
10분을 걸어 올라가면 토미오카성이 나온다. 일본 에도 시대 때 과도한 공납과 가톨릭 박해로 농민들이 ‘아마쿠사·시마바라의 난’(1637년)을 일으켰을 때 격전이 벌어지기도 한 곳이다. 토미오카성에 올라가면 확 트인 정경으로 토미오카 해안과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토미오카성을 뒤로하고 성벽을 따라 내려오면 곤겐산의 산책로가 나온다. 나무 사이로 시원한 바람과 함께 파도 소리가 잔잔하게 들린다. 산책로를 따라 40분을 걸어가면 산 위에 전망대가 하나 나오는데 바다와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다시 20분을 걸으면 토미오카 해수욕장이 나오고 눈앞에는 기암절벽이 펼쳐져 있다.
토미오카 해변을 따라 자갈길을 걸으면 곳곳에 도자기의 원료로 쓰이는 돌이 가득하다. 레이호쿠는 아마쿠사 도석의 산지로 유명한데, 아직도 100년이 넘게 도자기를 만들어 파는 가게가 여러 군데 있다. 중간중간에 여러개의 갈래길이 있지만 파란색과 빨간색 리본과 화살표가 가야할 방향을 이야기해 준다. 길을 걷다가 만나는 마을 주민들은 정다운 인사를 건넨다.
20분 동안 해변길을 걷다 보면 조그마한 마을로 들어선다. 모든 건물이 나무로 만든 단층이나 2층짜리 주택이다. 아기자기한 건물이 많이 이 마을 안에는 일본 전통과자를 만들어 파는 ‘구로세제과점’이 나온다. 140년 동안 8대가 제과점을 운영해오고 있다. 이 가게에는 일본어로 ‘꼬마대장’을 의미하는 ‘카키다이쇼’라는 이름의 과자가 눈길을 끈다. 곶감 안에다가 콩과 계란 등을 넣어 만든 과자인데 4년마다 한 번씩 일본에서 열리는 전국제과박람회에서 금상을 받은 과자다.
40분 동안 마을길을 걷다 보면 아마쿠사·시마바라의 난이 일어났을 때 희생자들이 묻혀 있는 크리스천 공양비를 볼 수 있다. 이어 산으로 나있는 오솔길을 따라 30분을 걸으면 시라키오해안이 나온다. 이어서 마을을 통과하는 골목길과 오솔길을 한 시간 동안 걷다 보면 시키성터가 나오고, 곧 온천센터에 도착하면서 이 코스는 끝이 난다.
일본 남서쪽 끝에 있는 규슈는 일본에 있는 4개 큰 섬 가운데 한국에서 가장 가깝다. 비행기로 인천에서는 1시간 20분, 부산에서는 50분이 걸린다. 남한의 절반 가량 면적에 1300만명이 산다. 규슈에는 후쿠오카, 사가, 나가사키, 구마모토, 오이타, 미야자키, 가고시마 등 7개 현이 있다. 구마모토현 서쪽에는 100개가 넘는 섬들이 있는 아마쿠사제도가 있는데, 아마쿠사·레이호쿠 코스는 이 중에 가장 큰 섬의 북서쪽에 만들어졌다.
규슈올레길은 2012년 2월 처음으로 다케오 코스(사가현), 아마쿠사·이와지마 코스(구마모토현), 오쿠분고 코스(오이타현), 이부스키·가이몬 코스(가고시마현) 등 4개가 개장한 뒤 지금까지 모두 15개가 만들어졌다. 이번에 열린 아마쿠사·레이호쿠 코스를 포함하면 15개 올레길의 전체 길이는 177.4㎞나 된다. 지난해 11월까지 규슈올레를 찾은 사람은 9만7380명으로, 한국인 비율이 63.8%로 가장 높다. 후쿠오카현에 2개, 사가현에 3개, 나가사키현에 1개, 구마모토현에 3개, 오이타현에 3개, 미야자키현에 1개, 가고시마현에 2개의 올레길이 있다.
규슈올레는 2011년 8월 일본 규슈 7개 현과 민간단체가 관광 활성화를 위해 설립한 규슈관광추진기구와 제주올레길을 만들어 운영하는 사단법인 제주올레가 업무협약을 맺으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제주올레에서 규슈에 길을 만드는데 자문과 길 표식 디자인을 제공하고 있다.
서명숙 사단법인 제주올레 이사장은 “가장 자연속에 있는 길을 찾고 나무 한 그루도 뽑지 않으며 느린 여행을 하는 것이 올레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며 “앞장서서 좋은 길을 찾느라 고생한 규슈 지역 주민들과 공무원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규슈/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토미오카성. 규슈/김일우 기자
토미오카성 내려와 산책로. 규슈/김일우 기자
과자가게. 규슈/김일우 기자
과자가게 나와서 오솔길. 규슈/김일우 기자
토미오카 해변으로 가는 길. 규슈/김일우 기자
아마쿠사 이와지마 코스 걷기. 규슈/김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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