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꿈 50대, 계약서 없이 돈 송금
“수업 부실·녹음 허술” 작곡가 고소
“수업 부실·녹음 허술” 작곡가 고소
‘세월아 걸음을 재촉 마라. 하도 빨리 가서 원망도 못 했는데~.’
박아무개(59)씨는 3년 전 가수 남진씨의 노래 ‘이력서’를 들으며 잊고 있던 트로트 가수의 꿈을 되살렸다. 사업 실패로 낙담하고 있을 때였다. 박씨는 “17살 때 노래를 부르고 싶어 상경했다가 포기한 일이 있다. 노래를 듣는 순간 ‘더 늦기 전에 꿈을 이루자’고 다짐한 뒤 다시 일어섰다”고 했다.
박씨는 지난해 2월 유명한 트로트 작곡가 차아무개(58)씨를 찾았다. 곡을 만들고, 노래를 배우고, 음반을 만들기까지 모든 과정을 차씨에게 맡겼다. 노래 다섯 곡을 앨범에 싣는 조건으로 6500만원을 차씨 계좌에 입금했다. 트로트업계에서는 신인 가수의 경우 박씨처럼 자비를 들여 음반을 내는 일이 많다고 한다. ‘스승과 제자’ 사이라는 믿음으로 계약서는 따로 쓰지 않았다고 했다.
지난해 9월 본격적으로 녹음이 시작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했다. 박씨는 25일 “노래를 가르쳐주는 시간과 일정이 들쑥날쑥했다. 녹음에 45인조 악단을 쓰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8명에 불과했다. 녹음실 역시 약속과 달리 좋은 곳을 쓰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박씨는 이제까지 쓴 비용을 제외하고 돈을 돌려달라고 했지만, 차씨가 이를 거부하자 서울 마포경찰서에 고소했다.
그러나 차씨의 주장은 다르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노래 연습 시간도 많았다. 45인조 악단은 얘기한 적도 없고, 녹음실 역시 충분히 좋은 곳을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스승과 제자는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시비를 쉽게 가릴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인 계약 내용은 없는 상태다.
방일우 한국연예예술인협회 사무총장은 “가수 본인의 돈으로 음반을 내는 경우 많게는 억대까지 비용이 들다 보니 음반을 만드는 과정에서 의견 충돌이 생길 수 있다. 서로 충분한 대화가 필요하고, 합의한 내용도 따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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