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6일 경북 상주시 낙동면의 한 주택에서 불이 난 이후 경찰관이 감식 작업을 벌이고 있다. 이 주택은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소유자인 배모씨의 집이다. 연합뉴스
골동품·고서적 등 소실
해례본 있었는지 확인 안돼
경찰 “소유자가 묵비권 행사”
해례본 있었는지 확인 안돼
경찰 “소유자가 묵비권 행사”
국보급 문화재로 평가되는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의 집에서 불이 났지만 훈민정음 상주본이 과연 온전한지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26일 오전 9시25분께 경북 상주시 낙동면 구잠리의 주택에서 불이 나 30여분 만에 꺼졌다. 이 집은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진 배아무개(52)씨의 집이다.
이 불로 배씨의 어머니 김아무개(83)씨가 다쳐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배씨 어머니는 집 안에 있는 물건을 꺼내려고 들어가다가 얼굴에 화상을 입었다. 60여㎡ 규모의 농가가 모두 타면서 집 안에 있던 많은 골동품, 고서적, 가재도구 등도 함께 사라졌다. 불이 날 당시 배씨의 형(62)이 집 안에 있었고 어머니 김씨는 인근 텃밭에서 일하고 있었다. 배씨는 이날 오전 외출한 상태였다.
배씨의 형은 “안방에 있었는데 갑자기 아무도 없는 작은 방에서 불이 났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하지만 집 안에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배씨를 상대로 조사했으나 훈민정음 해례본이 있었는지 등에 대해 전혀 얘기하지 않고 있다. 해례본에 관해 물어보면 묵비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감식을 의뢰해 화재 원인을 밝혀내기로 했다. 경찰은 현재로서는 불이난 집안에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이 없었던 것으로 보고 구체적인 행방을 찾고 있다.
1446년(세종 28년) 한글이 반포될 때 훈민정음과 동시에 한문 해설서인 훈민정음 해례본이 출간됐다. 이 해례본은 1962년 국보 70호로 지정됐으며, 이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고 서울 간송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지금까지는 이 간송판본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2008년 7월, 경북 상주에 사는 배씨가 집 수리를 위해 짐을 정리하던 중 훈민정음 해례본을 발견했다.
훈민정음 상주본으로 이름 붙인 이 본은 국보 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과 같은 판본이면서 보존상태가 좋아 높은 가치가 있다고 문화재계에 알려졌다. 그러나 상주의 골동품 업자 조아무개(2012년 사망)씨는 “배씨가 상주본을 내게서 훔쳤다”고 주장하면서 민·형사 소송이 벌어졌다. 배씨는 민사소송에서는 졌으나 형사재판에서는 절도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소송이 벌어지는 과정에서 훈민정음 상주본은 사라졌다.
지역문화계에서는 배씨가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낱장으로 나누어 어딘가에 보관하는 것으로 짐작만 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행방을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배씨는 그동안 “나만 아는 장소에 상주본을 뒀다”며 현재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구대선 기자 sunny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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