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중이용시설 1년만에 다시 가보니
비상구·옥상문 잠겨있고
방화셔터 밑 장애물 수두룩
“항상 닫혀있어야 합니다”
안내문 달린 방화문은 활짝
시설관리자 “안전설비 투자보다
사고 배상이 경제적”
안전 무감각 여전
비상구·옥상문 잠겨있고
방화셔터 밑 장애물 수두룩
“항상 닫혀있어야 합니다”
안내문 달린 방화문은 활짝
시설관리자 “안전설비 투자보다
사고 배상이 경제적”
안전 무감각 여전
세월호 참사 뒤 한국 사회는 안전에 예민해졌다. 일상적 관행을 안전의 관점에서 재점검하는 안전 패러다임이 조금씩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은 지체되거나 퇴행하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 이후로도 전남 장성 요양병원 화재, 경기 고양터미널 화재, 판교 환풍구 붕괴 참사, 의정부 도시형생활주택 화재, 인천 강화 캠핑장 화재 등 엇비슷한 유형의 안전사고가 잇따랐다.
<한겨레>는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둔 지난 7~10일 연안여객선 2개 노선, 대형마트·쇼핑몰·복합상영관 등 다중이용시설 10여곳의 안전 실태를 점검해봤다. 1년 전 현장점검에서 드러난 문제점(<한겨레> 2014년 4월25일·5월8일치 1면)들 가운데 일부는 개선됐지만, 여전히 많은 부분이 고쳐지지 않고 일상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었다.
‘방화문은 소방 관계법상 항상 닫혀 있어야 합니다.’ 이런 내용의 안내판이 붙은 철문은 민망하게도 활짝 열려 있었다. 안내판에는 ‘화재 발생 시 소방활동을 위해 피난계단으로 화염 및 매연 확산을 방지’한다는 목적까지 친절하게 적혀 있었다. 관광객들이 북적이는 서울 명동 한복판 대형쇼핑몰 눈(NooN)스퀘어의 방화문은 화재 발생 시 제구실을 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제가요? 제가 왜 받죠? 그냥 비상구로 나가면 되죠.” 이 쇼핑몰의 한 매장 주인은 화재 예방교육을 받았느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방화셔터가 내려오는 곳에 마네킹을 세워둔 매장 직원은 “점장님이 방화셔터 내려오는 곳에 두면 안 된다고 해서 그쪽에 세워뒀다. 그런데 이 자리도 방화셔터가 내려오는 곳이냐”고 되물었다.
비상구 계단을 통해 10층 꼭대기까지 올라가 봤다. 옥상 출입문은 경비업체의 전자잠금장치로 굳게 잠겨 있었다. 문 앞에는 제조 연도가 2005년인 소화기가 있었다. 지난 1월 의정부 도시형생활주택 화재 당시 입주민들은 유독가스가 계단을 타고 건물 전체로 퍼지자 옥상으로 대피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화재가 나면 감지해 전자잠금장치가 자동으로 열린다고 하지만, 소방법은 피난시설 폐쇄 자체를 못 하도록 하고 있다. 눈스퀘어 관계자는 “보안상의 문제로 옥상문을 열어둘 순 없다. 이용객들이 평소 비상계단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어 방화문이 열려 있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에스컬레이터는 화재가 나면 유독가스와 연기가 몰리는 굴뚝으로 변한다. 서울 천호동의 대형마트 킴스클럽에서는 에스컬레이터 주변 방화셔터가 내려오는 곳에 행사용품 판매대가 놓여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목이기 때문이다. 판매대에서 의류를 파는 종업원은 “안전교육은 자주 받는다”면서도 “항상 이렇게 물건을 두고 판매한다. (시설관리팀에서) 특별히 뭐라고 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옥외 비상계단을 설치하는 등 55억여원을 투자해 안전시설을 확충했다는 서울 동대문 근처 대형쇼핑몰 두타에는 방화셔터가 내려오는 지점 바로 밑에 카페에서 내놓은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화재로 사람들이 대피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누군가 의자를 열심히 밀어넣지 않는 한 방화셔터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다. 동대문 주변 쇼핑몰 밀리오레 일부 층은 방화문을 의자로 받쳐 항상 열어두고 있었다. 서울 신촌 메가박스의 경우 상가 쪽 방화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비상구가 아예 막힌 곳도 많았다. 서울 영등포동 복합쇼핑몰 타임스퀘어를 찾아가 2층에서 화재가 났다고 가정하고 대피 경로를 파악해봤다. 비상구를 따라 1층으로 내려갔는데, 정작 목재 가림판이 통로를 막았다. 반대로 옥상 쪽을 향해 올라가니 3~4층 비상구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심지어 5층 비상구에는 ‘문 만지지 마세요. 경비 이상 작동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밀리오레 20층에서 옥상으로 향하는 비상구도 마찬가지였다. 신촌 씨지브이(CGV)는 비상구로 나가는 길목에 사다리가 버티고 있었다. 비상구 폐쇄의 이유는 대부분 ‘시설 관리’였다. 관리가 안전에 우선하는 셈이다.
비상구로 안내하는 대피유도등이 제구실을 못하는 곳도 많았다. 서울 공덕동 이마트 1층 매장에서는 대피유도등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각종 광고물이 가린 탓이다. 이곳을 찾은 장송희씨는 “집이 근처라 자주 오는데 불이 나면 어디로 나가야 할지 찾기 힘들 것 같다”고 했다.
한 다중이용시설의 시설관리팀장은 “경제성을 따진다면 기업 입장에서는 만일에 한번 사용하는 안전설비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안전기준에 맞춰 리모델링을 하고 안전 관련 인력을 채용하는 비용을 따지면 사고 뒤 배상을 하는 것이 오히려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대형 매장을 찾은 김아무개씨는 “요즘 들어 유독 대형 공간을 찾으면 불안함을 느끼곤 한다. 대피로 등을 눈여겨보고 다니는 편이지만 여전히 안전하다고 느낄 만큼은 아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사람들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는데 제도 보완은 얼마나 됐는지 현실에서는 잘 느끼지 못한다”고 했다.
정부는 이달 말까지 ‘국가안전 대진단’을 실시하고 있다.
방준호 허승 최우리 김성환 기자 whorun@hani.co.kr
서울의 한 대형 쇼핑몰에 있는 카페에는 방화셔터(빨간 점선)가 내려오는 지점에 손님들이 앉아 있다. 허승 기자 rais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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