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스토리] 단원고 ‘성복이네 가족’ 1년
세월호 참사 희생자 단원고 박성복 군의 가족을 1년 가까이 만났다.
어머니 권남희 씨는 1년 사이 10년을 산 사람처럼 얼굴이 변했고,
아버지 박창국 씨는 몸무게가 십킬로그램 이상 빠져 광대가 도드라졌다.
아들을 먼저 보낸 고통과 마주한 부모 앞에서 차마 울 수 없어 푼수처럼 웃으려 애썼다.
하지만 헤어지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성복이네 가족의 1년을 사진으로 여기 풀어낸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1주일여 앞둔 4월 8일 오전, 박창국, 권남희 씨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창국 씨는 요양보호사로 일했던 남희 씨가 다시 일을 시작하겠다는 말이 못마땅하다. “아들 1주기가 더 중요하지.” 세월호특별법시행령부터 세월호 인양까지, 답답한 상황에 창국 씨의 목소리는 높아진다. “세월호 집회나 기자회견 한다는데 빠지면 어떻게 해. 그 시간에 광화문으로 가. 그리고 그 돈 벌어서 어따 쓰게, 나 하나 버는 거로 충분해.” 옆에서 고개를 숙인 채 이야기를 듣던 남희 씨는 “잔소리가 길어”라며 도보행진 이후 통증이 심해진 무릎을 부여잡는다.
검소한 남편 때문에
남편의 잔소리를 듣던 남희 씨는 아들 성복이의 짝눈이 떠올라 남편이 미워진다. “하루는 수박이 정말 먹고 싶어서 사달라고 신랑한테 말했지. 평소 같으면 들어도 못 들은 척하는데 이날은 알겠다면서 뭘 사 왔어. ‘수박맛바’ 아이스크림이더라고. 임산부가 잘 못먹으면 애가 짝눈이 된다는데.” 잔소리를 늘어놓던 창국 씨는 변명 한 번 못하고 멋쩍게 웃는다. 남희 씨는 이어 “성복이 임신했을 때 10달 내내 입덧을 하다 보니 입맛은 없고 속은 매슥거렸어. 그런데도 남편은 외식 한번 안 시켜주더라. 어쩔 수 없이 매슥거리는 속도 달랠 겸 남는 음식 쓱쓱 비벼서 비빔밥을 먹었는데, 아들이 비빔밥을 참 좋아했어”라고 말한다.
아들 때문에 호강하는데, 난 해준 게 없네
지난 겨울, 남희 씨는 딸 성혜와 온맘치유센터를 찾았다. 센터 내 상담사의 권유로 안마를 받던 남희 씨는 쏟아지는 눈물에 연신 얼굴을 훔쳤다. “몸이 아픈 게 아니라 마음이 아팠어. 아들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안마를 받게 됐는데 난 아들한테 해준 게 없더라고.” 남희 씨는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이후로 안마치료를 받지 않았다. 남희 씨는 얼마 전 성복이 친구들이 집에 찾아왔을 때 이야기를 꺼낸다. “애들이 성혜랑 끝말잇기를 하는데 우리 성혜가 계속 이기더라고. 정말 놀랐어.” 성복이는 여동생 성혜와 밤늦게까지 끝말잇기를 하다 어머니의 불호령에 각자 방으로 향하곤 했다. 성복이는 동생에게 어렵고 복잡한 한국어 낱말을 선물하고 떠났다.
감귤초콜릿을 사오겠다고 했는데 부부는 늘 바빴다. 창국 씨는 한 주씩 주·야간을 바꿔가며 2교대로 일했다. 남희 씨도 격일로 오전 9시께 일을 시작하면 다음날 아침 9시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밥벌이로 가족끼리 여행 한번 제대로 가본 적 없다. 남희 씨는 “안산에 시화방조제 가봤어? 30분이면 가는데 거기서 어묵 하나 사 먹고 돌아오곤 했어. 근데 다른 가족들은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국내에서도 여행을 많이 다녔더라고. 우리 가족은 나들이가 전부야”라며 제주로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들떠있던 성복이를 떠올렸다. 성복이는 제주도 수학여행에서 어머니를 위해 감귤초콜릿을 사오겠다고 약속했었다.
성복이와 남편
세월호 인양 촉구 도보행진 시작 첫날인 4일 아침 행진에 앞서 참가자들이 짐을 줄이기 위해 행진 보조 차량에 가져온 가방을 싣는다. 이날 늦게 도착한 희생 학생의 한 어머니는 가방을 멘 채로 걸음을 옮긴다. 이를 본 창국 씨는 가방을 대신 짊어진다. 이를 본 남희 씨는 “같이 사는 여자는 못 챙겨도 남의 여자는 참 잘 챙겨. 성복이가 이런 착하고 따뜻한 남편의 모습을 닮은 것 같아”라고 말한다.
실제 창국 씨는 청소, 설거지, 빨래 등 집안일을 도맡아 한다. 창틀에 낀 먼지도 젓가락을 이용해 걸레로 구석구석 닦는다. 도보행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남희 씨는 “다른 집 이야기 들어보면 우리 신랑은 정말 성실하게 집안일하고 도와주는 편이지. 이런 성격으로 나 20살 초반에 3,4년 쫓아다녔지. 내 뒷모습이 그렇게 예뻤데. 앞모습은 더 예쁜데”라며 남편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을 표현한다.
남희 씨는 파전을 부치며 눌어붙지는 않는지 수시로 확인하며 상을 차린다. 옆에 있던 창국 씨는 “지난 일 년 동안 늘 아내가 옆에 있어 줘서 허전하지 않았어. 내가 미운 짓 할 때면 밥 안 해준다고 하면서도 늘 맛있는 음식을 차려줘”라며, 남희 씨의 두 손을 잡는다.
사진·글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 1년 전 동행취재 “돌아와 깜짝 선물 준다던 아들이었는데…”
어머니 권남희 씨는 1년 사이 10년을 산 사람처럼 얼굴이 변했고,
아버지 박창국 씨는 몸무게가 십킬로그램 이상 빠져 광대가 도드라졌다.
아들을 먼저 보낸 고통과 마주한 부모 앞에서 차마 울 수 없어 푼수처럼 웃으려 애썼다.
하지만 헤어지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성복이네 가족의 1년을 사진으로 여기 풀어낸다.
박성복 군의 어머니 권남희 씨가 3월 31일 밤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인양 촉구 집회를 마친 뒤 경기도 안산 단원구 ‘세월호 사고 희생자 정부 합동 분향소‘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있다. 권 씨는 이날 버스에서 "이 길을 백번 넘게 다녔는데 아직 진상조사는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라며 답답한 심정을 전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기억하라 행동하라 행사 및 정부시행령 폐기 총력행동‘ 문화제가 열린 11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박성복 군의 아버지 박창국 씨(가운데)와 어머니 권남희 씨(왼쪽 두번째)가 ‘진상규명 가로막는 시행령을 폐지하라, 세월호를 인양하라, 너희들이 범인이다‘라고 구호를 외치며 행진을 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권남희 씨가 2014년 12월 6일 저녁 경기도 안산 집에서 고 박성복 군의 할아버지 팔순잔치 상을 차리던 중 남편 박창국 씨가 준 고기쌈을 먹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권남희 씨가 3월 2일 안산 단원구 원곡고등학교 1학년 교실에서 고등학교 입학식에 앞서 딸 박성혜 양의 옷 매무새를 고치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 박성복 군의 어머니 권남희(왼쪽 세번째부터) 씨와 아버지 박창국 씨가 15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 차려진 세월호 참사 분향소 입구에서 국화를 들고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진도/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감귤초콜릿을 사오겠다고 했는데 부부는 늘 바빴다. 창국 씨는 한 주씩 주·야간을 바꿔가며 2교대로 일했다. 남희 씨도 격일로 오전 9시께 일을 시작하면 다음날 아침 9시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밥벌이로 가족끼리 여행 한번 제대로 가본 적 없다. 남희 씨는 “안산에 시화방조제 가봤어? 30분이면 가는데 거기서 어묵 하나 사 먹고 돌아오곤 했어. 근데 다른 가족들은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국내에서도 여행을 많이 다녔더라고. 우리 가족은 나들이가 전부야”라며 제주로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들떠있던 성복이를 떠올렸다. 성복이는 제주도 수학여행에서 어머니를 위해 감귤초콜릿을 사오겠다고 약속했었다.
권남희씨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정부의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 폐기 촉구 기지회견’에 참가하던 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세월호 희생자인 아들 박성복 군의 영정사진을 목에 건 채로 ‘세월호 온전한 인양 결정 촉구 국민도보행진’에 참가한 권남희 씨(앞줄 가운데)가 도보행진 둘째날인 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를 지나 광화문광장으로 향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권남희 씨가 1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한 한방병원에서 무릎 부위 관절염 치료를 받으며 고통스러워하고 있다.권 씨는 1년 동안 잦은 집회와 서명운동, 도보행진 등에 참가하면서 무릎 상태가 악화됐다고 말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권남희 씨가 11일 낮 경기도 안산시 하늘공원에서 아들 박성복 군의 납골함 앞에 붙어있는 사진을 어루만지며 그리워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 박성복 군의 어머니 권남희(왼쪽) 씨와 아버지 박창국 씨가 15일 오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침몰사고 해역으로 향하는 배 여객실에서 머리를 마주한 채로 누워있다. 진도/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박성복 군의 아버지 박창국 씨가 2014년 11월 21일 경기도 안산 집에서 박 군이 다니던 단원고등학교 미술교과 교사가 그린 아들 초상화를 보여주고 있다. 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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