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으로는 처음 서울고법 재판연구원으로 임용된 김동현씨.
“아픈 사람들과 공감하는 판사가 되고 싶습니다.” 19일 시각장애인으로는 처음 서울고법 재판연구원으로 임용된 시각장애인 김동현(33)씨의 포부다.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을 다니던 김씨는 2012년 5월 불의로 사고로 양쪽 시력을 모두 잃었다. “처음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고 했지만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첫 시각장애인 판사 최영, 시각장애인 변호사 김재왕씨 등 선배들을 만나 조언도 들었다. 그는 “모두 하면 된다고, 할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다만 공부하는 방법이 눈으로 보다가 귀로 들어야 하는 것으로 달라진 것뿐’이라는 얘기에 힘을 내게 됐다”고 했다.
가족은 물론 주변 사람들 도움도 컸다. 책을 문서파일로 변환해 컴퓨터 낭독 프로그램을 통해 들어야 했는데 파일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다. 친구들은 필기를 대신 해주기도 했다. 그는 “재판연구원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도움을 준 주변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고 했다.
김씨는 20일부터 서울고법 민사23부에 배치돼 일한다. 집무실에는 그를 위한 청음실을 비롯해 시각장애인 화면 낭독 프로그램, 이미지 문자변환 프로그램이 설치됐다. 법원 건물에는 점자유도 블록도 깔렸다.
김씨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판사가 되고 싶다고 다시한번 다짐했다. 재판부 업무를 보좌하는 재판연구원(임기 2년)도 그래서 지망했다. “제게도 갑자기 사고가 찾아왔듯,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거든요. 사회가 좀 더 배려해준다면 장애인들이 고통을 빨리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요?”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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