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통해 ‘조사받아라’ 압박
전신 등 사진 10여장 찍어 비교
“투망식 수사…직권남용” 비판
전신 등 사진 10여장 찍어 비교
“투망식 수사…직권남용” 비판
검경이 지난 18일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집회에서 태극기가 그려진 종이를 불태운 시위자를 반드시 찾아내 처벌하겠다고 공언한 가운데, 경찰이 엉뚱한 시민을 용의자로 간주해 집안 옷장까지 뒤져 무리한 ‘투망식 수사’라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학생 ㄱ(24)씨가 사는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 경기경찰청 소속 경찰관들이 찾아왔다. 경찰은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통해 ㄱ씨 아버지에게, 다시 아버지를 통해 ㄱ씨에게 연락해 ‘태극기 훼손 사건과 관련해 얼굴 조회 등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경찰은 우체국에 근무하는 ㄱ씨 어머니에게도 전화를 걸어 ‘직장으로 찾아가겠다’고 했다.
애초 “소환장을 보내야 조사에 응하겠다”던 ㄱ씨는 압박감에 시달리다 경찰 지구대로 가 조사받았다. 경찰은 태극기를 불태운 사람이 찍힌 언론 보도 사진을 놓고 ㄱ씨의 얼굴과 비교했다. 조사 과정에서 ㄱ씨의 얼굴 정면·옆면과 전신 등 사진 10여장을 찍었다. 조사가 끝나자 경찰은 다시 ‘범인이 입었던 옷이 집에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ㄱ씨의 집으로 가 옷장 안 사진까지 찍어 갔다.
추모집회에 가기는 했다는 ㄱ씨는 2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사진 속 인물의 얼굴은 내 얼굴과 완전히 달랐다. 그런데도 경찰은 ‘혹시라도 맞다면 자수하라’, ‘아는 사람이면 알려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지역에서는 나를 포함해 6명이 수사 대상이라는 말을 경찰에게 들었다. 이런 식이면 과잉 수사 아니냐”고 했다.
경기경찰청은 “서울경찰청에서 용의자 자료를 줬다”고 했다. 경기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관계자는 “조사는 ㄱ씨 동의를 받아 이뤄졌다. 국민적 관심 사안이라 신속히 조사하려고 집으로 찾아갔다. ㄱ씨 아버지가 아들의 옷을 기억하지 못해 어머니에게도 전화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ㄱ씨는 범인이 아닌 것으로 보고 수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다만 최종 판단은 서울청에서 한다”고 했다. 서울경찰청 수사과 관계자는 “용의자는 계속 특정중이다. 수사중이어서 어떻게 특정했는지 답변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박주민 변호사는 “임의수사는 당사자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ㄱ씨의 동의는 경찰이 가족까지 압박하는 등 심리상태를 무너뜨린 뒤 이뤄진 것이다. 이는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했다.
한편 검찰은 1992년 대선 직후 야당 의원이 태극기를 불태웠다가 벌금형을 받은 사건을 근거로 국기모독죄(형법 제105조) 적용도 검토하고 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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