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도 세화엠피 회장이 포스코플랜텍(옛 성진지오텍)의 이란 공사대금 1000억원을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때 성진지오텍 최대주주였던 전 회장은 지난 2010년 경영난을 겪던 성진지오텍 주식을 포스코에 비싼 값에 넘기고, 반대로 산업은행에선 회사 주식을 헐값에 사들이는 ‘이중 특혜’를 받는 방식으로 수백억원의 차익을 챙겨, ‘엠비(MB)정권 실세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주인공이다. (<한겨레> 3월25일치 1·5면)
26일 포스코·포스코플랜텍·세화엠피의 말을 종합하면, 전 회장은 포스코플랜텍이 2010~2012년에 이란 석유공사에 석유플랜트공사를 해주고 받은 공사대금 7100만유로(약 1000억원) 대부분을 이란 현지은행 계좌에서 몰래 빼낸 뒤 사적 용도에 사용한 것으로 확인됐다. 포스코플랜텍은 이날 전 회장을 배임·횡령, 사문서위조 등 사기, 외국환관리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고발했다.
문제의 공사대금은 2013년 이후 미국이 이란 제재를 강화한 탓에 국내로 들여올 수가 없어서, 이란 현지은행 계좌에 임시로 보관된 상태였다. 포스코는 성진지오텍을 인수한 뒤 미국과의 비즈니스에 미칠 위험성을 감안해 포스코플랜텍과 이란 간의 직접 공사계약을 피하기로 하고, 포스코플랜텍→세화엠피→세화엠피의 이란 현지법인(SIGK)→이란석유공사로 이어지는 간접계약방식으로 전환했다.
포스코플랜텍 관계자는 “이란에서 받은 공사대금 1천억원은 세화엠피의 현지법인 명의 계좌에 들어 있었지만, 포스코플랜텍이 받을 돈”이라며 “세화엠피가 안전하게 보관하다가 미국 제재가 풀리면 전달하기로 포스코플랜텍에 확약서를 쓰고 분기마다 은행계좌의 잔고증명서까지 보내줬는데, 전 회장이 허위 잔고증명서를 작성하고 자금을 몰래 빼 쓴 것”이라고 말했다.
전 회장의 자금인출 시점은 2013~2014년 사이로 추정되는데, 포스코플랜텍은 최근에서야 뒤늦게 불법 인출 사실을 알았다. 전 회장은 지난주 포스코와 포스코플랜텍 관계자와 만나 인출한 돈을 한국과 이란에서 개인적 투자에 사용했다고 시인하고, 당장은 어렵지만 수개월 안에 빼낸 돈을 원상회복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포스코와 포스코플랜텍은 담보제공도 없이 전 회장의 말을 믿을 수는 없다고 보고 고소·고발을 결정했다.
전 회장과 세화엠피는 현재 포스코플랜텍의 지분 5.56%를 가진 2대 주주다. 포스코는 성진지오텍을 인수한 뒤 경영부실이 더 심해지자 2013년 계열사인 포스코플랜텍에 합병하고 2013년과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3700억원의 거액을 유상증자 참여 방식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장부상 미수채권으로 잡혀있는 1000억원이 제대로 회수가 안 되면, 경영 정상화가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또 포스코건설의 비자금 조성 혐의를 수사하고 있는 검찰은 전 회장에 대한 포스코와 산업은행의 특혜 의혹에도 주목하고 있어, 이번 사건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다.
곽정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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