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수송동의 국세청 건물. 한겨레 자료 사진
성매매 혐의로 체포된 국세청과 감사원 간부들을 두달 넘게 수사한 경찰이 30일 이들에게 성매매처벌법 위반 혐의만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유흥주점 동석자들이 술값과 성매매 비용 수백만원을 지급하는 등 뇌물수수를 의심할 정황이 드러났는데도 관련자들을 입건조차 하지 않아 ‘부실·축소 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국세청 4급 간부 이아무개씨와 서아무개씨, 감사원 4급 과장 김아무개씨와 5급 김아무개씨를 성매매처벌특별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세청(지난달 2일)과 감사원(지난달 19일) 간부들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유흥주점과 요정에서 각각 술을 마신 뒤 여종업원을 상대로 성매매한 혐의로 체포됐다.
경찰 조사 결과, 국세청 간부 2명의 술값과 밥값, 성매매 비용은 업무 연관성이 큰 ㅅ회계법인 임원 2명이 낸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4명이 하룻밤에 쓴 돈은 503만원인 것으로 파악됐다. 라혜자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은 “대학 동문으로 친분이 있던 국세청 직원과 회계법인 임원이 ‘저녁 한번 먹자’고 해서 만들어진 자리다. 임원이 법인카드로 계산했지만 개인 돈으로 카드 비용을 냈다. 업무였다면 개인이 결제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업무 연관성, 대가성이 없다고 봤다”고 했다. 경찰은 이런 판단을 근거로 국세청 직원과 회계법인 임원 등 4명을 뇌물수수 및 공여 혐의로 입건조차 하지 않았다.
감사원 간부들 역시 피감기관인 한국전력 직원 2명과의 술자리에서 ‘공진단’(한약)과 비타민제를 선물받고 성매매를 하다 체포됐지만, 경찰은 뇌물 의혹에 대해서는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불기소 의견을 냈다. 이들 4명이 쓴 돈은 180만원이다. 라 수사과장은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는 보이진 않아서 뇌물수수·공여 혐의로 (일단) 입건은 했다”면서도 “각자 돈을 나눠 냈다고 진술하고, 감사원 직원들은 내부 감찰팀 소속이라 한전과 직접적인 관계도 없다. 또 선물받은 공진단 가격 등에 비춰볼 때 뇌물죄를 적용하기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벤츠 여검사’ 사건 판례 등을 참조해 법리 검토를 마쳤다고 했지만 ‘무 자르듯’ 대가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세청 간부들을 접대한 회계법인 임원은 기업 등의 조세 업무를 전담하는 ‘택스본부’에서 핵심 역할을 하던 이다. 이 회계법인에서 오래 근무했던 한 인사는 “국세청 쪽에 개별 사안마다 접대를 할 수 없으니 평상시 관리를 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했다.
법인카드를 썼지만 이를 나중에 개인 돈으로 처리했기 때문에 대가성이 없다는 판단도 수사의 기본과 거리가 멀다는 비판이 나온다. 성매매가 경찰에 적발된 상황에서 성매매 비용을 회사에 청구할 리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갑’의 위치에 있는 국세청·감사원 간부들만 성매매를 하고 ‘을’들은 성매매까지 가지 않은 상황은 술자리가 사교 모임이 아니라 향응 제공 자리였을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한다.
경찰은 국세청과 감사원 직원들의 성매매를 알선한 업주와 종업원 등 7명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겠다고 밝혔다.
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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