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모씨 염문 덮으려고 공안정국 조성하는가?’ 문제 삼아
법원 “주거 없이 돌아다니고 출석 요구 불응해 도주 우려”
구속 뒤 수성경찰서에 ‘과잉 수사’ 비판하는 전화 빗발쳐
법원 “주거 없이 돌아다니고 출석 요구 불응해 도주 우려”
구속 뒤 수성경찰서에 ‘과잉 수사’ 비판하는 전화 빗발쳐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을 만들어 배포한 박성수(41·전북 군산)씨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정영식 대구지법 영장전담판사는 30일 저녁 7시께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정 판사는 “박씨는 일정한 주거가 없이 돌아다니며 유인물 배포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에 일부 불응했던 점에 비추어 도주 우려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박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는 이날 오후 4시부터 한시간 동안 대구지법 제13호 법정에서 진행됐다.
박씨는 지난 21일 대구 수성경찰서에 자진출석해 경찰 조사를 받다가, “더 조사 받기 싫다”면서 돌아갔다. 경찰서를 나온 박씨는 이날 “경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며 공안몰이 수사를 한다”고 항의하며 수성경찰서 앞에 개사료를 뿌렸다. 22일 박씨는 대구지방경찰청 앞에서 ‘민주 경찰 사망 애도식 및 전단지 공안 탄압 규탄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앞서 이날 대구 수성경찰서는 박씨에 대해 명예훼손 및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박씨는 지금까지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 3만2000여장을 만들어 37명에게 우편 등을 통해 나눠준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이 전단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혐의도 받고 있다. 박씨는 ‘정모씨 염문을 덮으려고 공안정국 조성하는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 정치 개입, 선거 개입 유죄, 징역 3년 실형, 강탈해간 대통령 자리 돌려줘’ 등이 쓰인 전단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배포했다. 경찰과 검찰은 이 가운데 ‘정모씨 염문을 덮으려고 공안정국 조성하는가?’라는 부분에 명예훼손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다.
경찰 관계자는 “박 대통령과 정윤회(60)씨의 염문설은 이미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는데도, 이를 전단에 넣어 배포한 만큼 당사자 2명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지난 2월16일 변홍철(46)씨가 새누리당 대구시당 앞에서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 20여장을 뿌리는 퍼포먼스를 한 뒤 전단을 주워 돌아간 것이 발단이 됐다. 이후 수성경찰서가 수사에 나서 변씨에게 2월17일(경범죄 처벌법 위반), 2월23일(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 3월16일(명예훼손) 등 모두 3차례에 걸쳐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또 박씨가 전단을 만들어 변씨에게 보낸 것을 알아내 박씨에게도 2월28일(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과 3월20일(명예훼손) 2차례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박씨는 이에 항의해 수성경찰서에 지난 3월2일과 3월23일 각각 개사료와 개껌을 보내기도 했다.
박씨는 지난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 앞에서 박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 관련 수사를 하는 것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다가 “멍멍”하고 외쳤다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찰에 현행범 체포됐다. 서울 서초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은 박씨는 이날 저녁 8시10분께 풀려났다. 하지만 수성경찰서 소속 경찰관들이 법원으로부터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풀려난 박씨를 다시 체포해 수성경찰서로 압송해 조사를 벌였다.
명예훼손은 당사자의 고소가 없어도 수사나 기소가 가능하다. 하지만 당사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면 처벌할 수 없다. 당사자의 고소가 없는데 알아서 수사기관이 수사에 나서는 것 자체가 매우 이례적이다. 출석요구서에 적힌 혐의가 매번 바뀌는 것도 흔치 않다. 박씨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날 수성경찰서에는 경찰의 과잉 수사를 비판하는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시민단체들은 오는 4일 대구지방법원 앞에서 박씨의 석방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대구/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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