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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아들은 떠났지만, 다른 얼굴로 살아있습니다

등록 2015-05-07 20:08수정 2015-05-07 21:00

서울시민청 장기기증인 추모 전시회
‘사랑의 장기 기증 운동본부’ 직원들이 뇌사 장기기증인을 위한 추모전시회 ‘리멤버 유어 러브’ 개최를 하루 앞둔 7일 오후 서울시청 내 시민청 갤러리에서 전시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사랑의 장기 기증 운동본부’ 직원들이 뇌사 장기기증인을 위한 추모전시회 ‘리멤버 유어 러브’ 개최를 하루 앞둔 7일 오후 서울시청 내 시민청 갤러리에서 전시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김태현(55)씨에게 8일은 막내아들을 먼저 보내고 네번째 맞는 어버이날이다.

그는 이날부터 서울시청 시민청 갤러리에 전시되는 아들의 모습이 담긴 조형물 앞에서 눈을 감고 자식의 생전 모습을 떠올려볼 생각이다. 김씨는 7일 “일상은 여전히 바쁘게 돌아가지만, 잠깐이라도 전시장에 들러 가슴에 꽃을 달아주겠다던 아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싶다”고 했다. 아들 고 김기석군은 2011년 12월4일 6명에게 장기를 주고 세상을 떠났다. 16살 때다.

2011년 12월2일부터 4일까지, 무척이나 길게 느껴진 그 사흘을 김씨는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는 아들을 데리고 급히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전날에도 농구를 했고, 한달 전에는 10㎞ 마라톤을 완주할 정도로 건강했던 터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김씨는 “응급실 병상에 앉은 애한테 ‘휴대폰 그만 보라’고, ‘많이 아프냐’고 평소처럼 대화를 나누던 중에 애가 갑자기 힘을 잃고 쓰러졌다. 큰 병원으로 옮겼지만 당장 머릿속 물을 빼는 응급수술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했다.

‘어버이날’ 부모님들 모시고 개막
17일까지 40명 추모비·영상 등 전시

“짧은 생, 그냥 보내는 게 싫어
어딘가에 살아 있다고 위로 받아”

“예쁜 꽃 보고 있니…이거 맛봐…
아들 먼저 보내고 혼잣말 잦아져”

김씨는 수술실 앞에서 수많은 생각을 했다. 아직 어리고 건강한 만큼 금방 회복될 거라는 기대, 후유증이 남으면 결혼은 어떻게 시킬까 하는 걱정이 교차하다가, 아들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숨 막히는 불안감”이 엄습했다고 한다.

그때 든 생각이 장기 기증이었다. 김씨는 “너무 귀한 아들의 흔적을 세상 어딘가에라도 남겨둬야 한다는 마음이 컸다. 아이 셋을 키우다 보니 풍족하게 해주지 못했는데, 원망도 않고 중학교 때부터 스스로 돈을 벌어 부모 선물을 챙기던 아이였다. 그런 아들의 짧은 생을 그냥 보낸다는 게 싫었다”고 했다. 김군의 건강했던 심장, 췌장, 간, 폐, 신장 2개는 그렇게 여섯 생명을 살렸다.

김씨는 “이식받은 이들을 직접 만날 수는 없었지만 모두 우리 기석이의 장기를 받아 건강을 되찾았다고 들었다. 기석이가 그분들을 통해 어딘가에서 살아 있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위로가 된다”고 했다.

27살이던 아들 박진성씨를 2007년 먼저 떠나보낸 김매순(62)씨도 8일 시민청 전시장을 찾는다. 세 아들 중 막내인 박씨는 공부 잘하고 속 안 썩이는 살가운 아들이었다. 어버이날 카네이션은 늘 막내 박씨가 준비했다. 교수가 되려고 박사학위 과정을 준비하던 차에 갑자기 뇌혈관 질환이 찾아왔다.

김씨는 아들이 떠난 뒤 혼잣말이 잦아졌다고 했다. “요즘처럼 꽃 피는 계절이 오면 진성이한테 ‘꽃 너무 예쁘다. 잘 보고 있지’라고 묻고, 맛있는 음식 앞에선 ‘진성이도 이거 맛보면 좋을 텐데…’라고 말해요. 나는 진성이가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눈을 통해 보고, 누군가의 장을 통해 음식을 소화하고 있다고 믿어요.” 아들의 각막과 심장, 피부는 7명에게 이식됐다.

‘사랑의 장기 기증 운동본부’는 오는 17일까지 서울시청 시민청 갤러리에서 뇌사 장기기증인을 추모하는 ‘리멤버 유어 러브’ 전시회를 연다. 장기 기증인 40명의 얼굴이 담긴 추모비와 유가족 인터뷰 영상, 장기 기증을 받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이 담긴 편지가 전시된다. 두 김씨를 비롯해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 6명도 어버이날에 자식들을 추억하기 위해 개막 행사에 함께한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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