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서울 관악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 이백형 경위가 서울 관악구 남강고교 졸업식에서 관할지역 학생들과 어울려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관악경찰서 제공
서울 관악구에 사는 고교생 김재원(가명·16)군은 중학교 3학년이던 지난해 초등학교 동창 여학생에게 ‘야동’(음란 동영상)과 여성의 알몸 사진을 휴대전화 문자메시지에 첨부해 보냈다. 깜짝 놀란 동창생은 학교폭력 신고전화(117)와 담임교사에게 이를 알렸다. 김군은 “장난으로 그랬을 뿐 죄가 되는지 몰랐다. 다음부터 안 하겠다”며 사과했다. 그러나 피해 학생의 학교는 강한 처벌 의사를 밝혔고, 김군은 정보통신망법 위반(음란물 유포)으로 형사입건될 처지에 놓였다.
이 사건을 맡은 관악경찰서 학교전담경찰관 이백형 경위는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중재에 나섰다. 피해 학생 부모와 교사에게 “제가 잘 살펴보겠다”고 설득한 뒤, 김군을 경찰서 주최 수련회에 데려가고 집으로도 초대했다. “텔레비전에서 전자발찌 차는 것 봤지? 너도 그럴 수 있어” “네 여동생한테 어떤 남자애가 이런 동영상 보내면 어떨 거 같아?” 이 경위는 김군과 지속적으로 대화했다.
경찰관과 가해 학생의 대화는 스마트폰 메신저 ‘카톡’에서도 이어졌다. 김군은 처벌을 받는 대신 매주 월요일마다 전날 일과를 이 경위에게 정리해 보내기로 했다. 김군이 “8시에 일어나 씻고 10시에 교회를 간 뒤 3시에 친구와 축구를 하고 5시에 집에 도착했습니다”라고 보내면, 이 경위는 “널 위해 내가 기도한다”며 진심을 담은 ‘답톡’을 보낸다. 김군 부모와도 수시로 메신저 대화를 나눴다. 김군 어머니가 “애가 총싸움 게임을 즐겨 하는데, 그때마다 눈빛이 폭력적으로 변한다”고 하자 “그 내용을 참고해 대화하겠다”고 답했다. 피해 학생에게는 “요즘 괜찮니?”라고 ‘선톡’을 띄운다.
서울 관악경찰서 여성청소년과 학교전담경찰관 이백형 경위가 학생과 주고받은 ‘카톡 반성문’ 내용. 사진 관악경찰서 제공
이 경위가 학생들과 카톡 대화를 시작한 것은 “아이들의 일상을 파고들기 위해서”다. 그는 “아이들에게 자신의 일상을 기록하게 하는 것은 ‘반성문 쓰기’를 시킨 것이다. 스스로를 돌아보며 긴장하게 만들고, 경찰과 꾸준히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김군은 지난해 3월부터 최근까지 43차례 ‘카톡 반성문’을 보냈다.
이 경위의 카톡 대화 상대는 김군만이 아니다. 그의 카톡 대화창에는 1887명의 관악구 학생들이 있다. 모두 학교폭력 피해·가해자로, 그와 한 번 이상 인연을 맺은 학생들이다. 중학생에게서 피시방 비용을 빼앗아 상습공갈 혐의로 입건될 뻔한 고등학생 이진성(가명·16)군도 중학교 3학년이던 지난해 ‘카톡 반성문’을 보냈다. 이 경위는 이군의 ‘카톡 반성문’ 화면을 갈무리해 보여주며 “지금 이 학생이 반성하고 있다”며 선처를 호소했다. 피해 학생과 그 부모는 이군을 불입건하는 것을 ‘양해’했다.
그렇다고 카톡 반성문이 만능은 아니다. 꾸준히 카톡으로 일상을 공유하던 학생이 지난해 특수절도 혐의로 입건되기도 했다. 이 경위가 유치장을 찾아가 범행 전 보내온 반성문을 보여주니 이 학생은 고개를 숙였다고 한다. 이 경위는 지금도 학생 수십명과 카톡을 통해 대화하고 있다. 이 경위는 다른 학교전담경찰관들에게도 “카톡을 보낼 땐 반드시 이름을 불러주고, 축구 좋아하는 애한테는 ‘축구 열심히 해라’ 이런 식으로 얘기해주는 게 좋다”며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