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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65살, 제대를 명 받았습니다 충성!

등록 2015-05-17 20:08수정 2015-05-17 22:07

퇴역 앞둔 ‘춘천 102보충대’
육군 셋 중 한명은 저를 거쳐
‘진짜 사나이’가 됐답니다
입영통지서에 ‘102’가 찍히면
빡센 전방부대·지옥의 문…
어머니·애인은 눈물을 쏟아낸다죠
매주 화요일이 그날입니다
입영 장정 1000명에 수천명 북적
지역상인들은 웃는 날이지만
‘102’ 떼는 날, 주민들이 걱정됩니다
전군 유일의 보충대로 남겨진 ‘제1야전군사령부 102보충대대’ 입영식이 지난 12일 열렸다. 육군은 지난해 해체된 의정부 306보충대의 파급효과 등을 분석해 올해 안에 102보충대의 해체 시기를 결정짓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102보충대 정문 앞에서 입영 장정과 가족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등 입영식을 위해 부대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 춘천/박수혁 기자 psh@hani.co.kr
전군 유일의 보충대로 남겨진 ‘제1야전군사령부 102보충대대’ 입영식이 지난 12일 열렸다. 육군은 지난해 해체된 의정부 306보충대의 파급효과 등을 분석해 올해 안에 102보충대의 해체 시기를 결정짓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사진은 102보충대 정문 앞에서 입영 장정과 가족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등 입영식을 위해 부대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 춘천/박수혁 기자 psh@hani.co.kr
제 이름은 ‘제1야전군사령부 102보충대대’입니다. 줄여서 다들 ‘102보’라고 부르죠. 닭갈비와 막국수로 유명한 강원도 춘천에 살고 있답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3월8일 태어났으니 올해 세는나이로 65살이네요. 그동안 전국에서 찾아온 수많은 젊은이들과 짧지만 소중한 인연을 맺었습니다. 해마다 4만여명의 젊은이들과 만났으니, 어림잡아 260만여명의 ‘팔도 사나이’들을 만난 셈이죠. 덕분에 막강 인맥을 자랑합니다. 송중기, 유승호, 원빈, 성시경, 지현우, 이동건 등 셀 수 없이 많은 유명 연예인들이 저와 함께 3박4일을 보냈죠. 지난 3월에는 문화방송(MBC)의 <진짜 사나이>에도 나와 유명세를 타기도 했습니다.

저는 충남 논산훈련소와 지난해 말 해체된 경기도 의정부 306보충대와 함께 육군 새내기 병사의 필수 코스입니다. 육군에 입대한 젊은이 셋 가운데 한 명은 저를 거쳐 ‘진짜 사나이’가 됐습니다. 고향은 제주도예요. 제주도 모슬포에서 ‘제1훈련소’란 이름으로 태어났어요. 하지만 다음해인 1952년 대구로 이사를 간 뒤 1953년 춘천 근화동, 1967년 춘천 신북읍 율문리 등을 전전하다 1987년 지금 자리인 춘천 신북읍 용산리에 터를 잡았답니다. 남쪽 섬에서 태어나 각종 도시개발에 밀려 변두리로 옮겨 다니다 네 번의 이사 끝에 정착한 셈이죠.

저를 거쳐 가면 1군사령부가 담당하는 강원 최전방을 지키는 동부전선에 주로 배치됩니다. 그러니 입영통지서에 ‘102’가 찍히느냐, 논산훈련소가 찍히느냐는 입영 예정자들에게 남다른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죠. 102는 ‘빡센 전방부대’를 뜻하는 숫자가 돼버렸습니다. 일부 예비역 장병들은 우스갯소리로 저를 ‘지옥의 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더군요.

그래서일까요. 매주 화요일 주위는 온통 울음바다입니다. 지난 12일 풍경도 다를 바 없었죠. 어머님들은 아들을 떠나보내는 아쉬운 마음에 눈물을 훔치고, 애인을 군에 보내는 여성들은 목 놓아 눈물을 펑펑 쏟기 일쑤죠. 양정희(63)씨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건강하게만 다녀와라”라는 말만 되풀이하더군요. 아버님들도 늠름한 아들의 모습이 자랑스러운 듯 어깨를 토닥거리거나 손을 꼭 잡아주며 눈물을 참곤 하네요.

당사자의 마음은 오죽할까요. 불안한 마음으로 정문을 통과해 가족들과 헤어지는 20살 안팎의 새파란 젊은이들을 볼 때면 안타까움만 켜켜이 쌓입니다. “잘 다녀오겠다…”는 말을 채 잇지 못하고 돌아서는 청년의 마지막 인사에, “몸 건강해야 해…”라며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는 가족들의 안타까운 이별 장면은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네요. 이날 입대한 이아무개(21·경남 거창)씨는 “조금 두렵고 긴장된다. 그나마 고향 친구와 동반 입대할 수 있어 위안을 삼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를 배웅하러 온 친구 김상혁(21·경남 거창)씨는 “어차피 갈 사람은 빨리 갔다 오는 게 좋다. 다시 만날 휴가 때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겠다”고 위로의 말을 건넸죠.

입영식에 앞서 ‘현 시간부로 부모님과 분리’라는 방송이 울려퍼지자 장정들이 가족과 친구, 연인 등과 헤어져 연병장에 차례로 모이고 있는 모습.
입영식에 앞서 ‘현 시간부로 부모님과 분리’라는 방송이 울려퍼지자 장정들이 가족과 친구, 연인 등과 헤어져 연병장에 차례로 모이고 있는 모습.
이들이 흘리는 눈물에도 불구하고 매주 화요일이면 주위 식당과 슈퍼, 주유소는 모처럼 활기를 띱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매주 화요일 1000여명의 젊은이가 입대하고, 그들을 배웅하려고 온 가족·친구들까지 합하면 4000~5000명이 춘천을 찾아오기 때문이죠. 입소시간도 오후 2시라 대부분 인근 식당에서 헤어지기 전 ‘마지막 점심’을 먹으며 아쉬움을 달랩니다. 지역상권이 모처럼 활짝 웃는 날입니다.

도로 주변도 입대를 앞둔 젊은이들을 상대로 물건을 파는 노점상들로 북새통을 이룹니다. ‘입대 필수품’이라거나 ‘팔·무릎 보호대’ ‘시계·깔창’ 등이 적힌 작은 펼침막이 어지럽게 널려 있죠. 입대하면 속옷부터 양말까지 모든 생활용품이 지급되지만 혹시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신발 깔창이나 시계, 로션 등을 사는 장정들도 꽤 많습니다. 제가 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이색적인 풍경이죠.

낮 12시 부대를 개방하면, 입영 장정과 가족들이 물밀듯 들어와요. 3박4일간 지내게 될 생활관과 식당 등을 가족과 함께 둘러보죠. 1시부터는 이별의 아쉬움을 달래주기 위해 부대 안 야외광장에서 입영문화제가 열려요.

오후 2시부터 입영식이 시작됩니다. ‘현 시간부로 부모님과 분리!’라는 방송이 울려퍼지자 입영문화제를 보며 잠시 긴장의 끈을 놓고 있던 입영 장정과 가족들은 곳곳에서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느라 분주해요. 연병장에 모인 장정들은 입영식에서 부모님께 크게 경례를 한 뒤 모두 강당으로 사라집니다. 입영의 순간이에요.

보충대에서 뭐 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도 많더군요. 보충대는 입대 뒤 사단 훈련소로 갈 장정들이 3박4일간 머물며 신체검사를 하고 군생활에 필요한 군복과 군화 등 군수품을 지급받는 곳이에요. 복무기간 근무하게 될 부대도 이곳에서 뺑뺑이를 돌려 배정받아요. 입고 온 옷과 휴대전화, 담배 등 가져온 물건들을 모아 자신의 집으로 보내기도 하죠. 이곳에선 민간인도 병사도 아닌 ‘장정’이라는 낯선 호칭으로 불린답니다. 3박4일 일정이 끝나면 장정들은 금요일 오전 10시부터 지급받은 보급품을 가득 담은 더플백을 짊어진 채 배정받은 부대 신병교육대로 버스를 타고 이동합니다. 이곳을 통과해야 ‘진짜 군인’이 될 수 있어요. 신체검사 등을 통과하지 못하면 춘천역이나 춘천시외버스터미널로 보내져요. 지난해에만 1056명이 ‘귀가자’로 분류되는 등 저를 통과하지 못하고 집에 가는 장정도 한 해 1000여명이나 된답니다.

요즘 큰 고민이 생겼어요. 최근 시한부 선고를 받았기 때문이죠. 절친인 의정부 306보충대도 지난해 말 해체돼 우리 곁을 떠났어요. 그 덕분에 유일한 보충대로 남겨졌죠. 국방부는 도로 등 교통이 좋아지고 개인 승용차 보유 대수가 증가하는 등 접근성이 개선되면서 더 이상 보충대가 필요하지 않다고 하네요. 각 사단 신병교육대로 곧바로 가면 된다는 거죠. 306보충대가 해체되면서 수백명의 병력과 연간 22억원의 예산이 절감될 것으로 국방부는 기대하고 있어요. 국방개혁 기본계획에 따른 부대 통폐합의 일환인 셈이죠.

원래는 저도 지난해 말 해체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어요. 그러다 요즘은 지난해 말 해체된 306보충대의 파급효과 등을 분석해 올해 안에 해체 시기를 결정하겠다는 분위기예요. 아직 강원도는 도로 등 기반 여건이 충분하지 않아 입영 장정과 가족 등의 불편이 클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래요. 육군 관계자에게 물어봤더니 “해체로 방향은 잡혔다. 다만 시기를 검토하고 있을 뿐이다. 올해 하반기께 (해체 시기가) 결정될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환갑도 훌쩍 넘긴 나이니 해체가 두렵진 않아요. 남들은 다들 퇴직할 나이라 저도 이젠 쉬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다만, 남겨진 인근 상인들이 걱정이에요. 매주 화요일, 활짝 웃던 그들의 미소를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 같네요. 그래서 306보충대 마지막 입소날 주변에 걸려 있던 ‘306보충대 해체 결사반대!’라는 펼침막이 더욱 가슴을 찡하게 하네요.

102보충대 바로 앞에서 매점과 식당을 하고 있는 이원창(72)씨는 “102보 때문에 그나마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장사를 해 먹고살 수 있었다. 국방부에서 예산 절감만을 내세워 없애려고만 하면 주민들은 어디 가서 먹고살라는 말이냐. 어쩔 수 없이 없애야 한다면 춘천시 등과 협의해 먹고살 대책이라도 마련해달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해요. 이들의 하소연에도 귀를 기울여주길 바라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제 마지막 소원이에요.

춘천/글·사진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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