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박판을 벌인 이들이 가진 돈 전액을 무조건 ‘판돈’으로 간주해 몰수할 수는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신아무개(48)씨는 2013년 9월 서울 마포구 성산동의 한 공원에서 화투 도박의 일종인 도리짓고땡을 하다 현장을 덮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은 10명한테서 판돈 600만원을 압수했는데 신씨가 가지고 있던 108만5000원도 포함됐다.
도박꾼들에게 커피를 파는 ‘이모’ 신씨는 가끔 도박판에 끼기도 했다고 한다. 신씨는 “가방에 들어 있던 100만원은 수술비로 쓰려고 모은 돈인데 집에 물난리가 나서 가방에 넣고 다녔다”며 도박자금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나머지 8만5000원도 “커피 팔아 번 돈”이라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1월 도박 혐의로 기소된 신씨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벌금 50만원과 함께 “도박 판돈 108만5000원을 몰수한다”고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을 맡은 서울서부지법 형사항소1부(재판장 한영환)는 “기초생활수급자로 도박 전과가 없는 신씨가 판돈으로 100만원을 지니고 있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며 8만5000원만 판돈으로 인정해 몰수할 것을 선고했다고 19일 밝혔다. 재판부는 “현장에 있던 도박꾼들 대부분이 각자 50만원 이하의 판돈을 가지고 있었고, 주도적으로 참여한 사람도 99만원 정도의 도박자금을 가지고 있었다”며 신씨가 100만원 넘는 돈을 도박에 쓰려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도박죄로 벌금 5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단은 그대로 유지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