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올해 새로 채용한 국선전담변호사들 가운데 절반가량을 재판연구원(로클럭) 출신으로 채운 것으로 나타났다. 국선전담변호사제도가 ‘예비 판사’들의 경력 관리에 이용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겨레>가 26일 5개 고등법원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받은 ‘2015년 국선전담변호사 신규채용 현황’을 종합한 결과, 올해 새로 채용된 국선전담변호사 40명 가운데 18명(45%)이 재판연구원 출신이었다. 서울고법은 31명 중 13명, 광주고법은 3명 중 2명, 부산고법은 4명 중 3명이다. 대전고법은 2명 모두 변호사 출신이고, 대구고법은 신규 채용이 없었다.
재판연구원 출신 국선전담변호사들 대다수는 근무했던 법원에 다시 채용됐다. 현재 재판연구원 출신 국선전담변호사 41명 가운데 34명(82.9%)이 재판연구원으로 근무하던 법원에서 일한다. 이런 경우는 서울고법이 21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으로 광주고법(7명), 부산고법(4명), 대전고법(2명) 순이다.
대법원은 검사·변호사 경력 3년 이상인 사람들 가운데 판사를 선발하는 법조일원화를 시행하면서 2012년부터 매년 사법연수원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신 100명을 재판연구원으로 선발해 각 고등법원에 배치했다. 임기 2년인 재판연구원들은 판사를 도와 사건 심리, 판례 분석, 재판 조사연구를 한다. 이들은 재판연구원을 마친 뒤에도 1년간 변호사로 활동해야 판사 임용 자격을 얻게 되는데, 국선전담변호사 제도를 이용해 이를 메꾸는 것으로 보인다. 즉, 법원이 우수 인력을 ‘입도선매’하려고 총 3년간 경력을 쌓도록 관리해주는 셈이다.
한 변호사는 “재판연구원 출신은 법원에 길들여진 사람들이고, 국선전담변호사도 법원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 법원은 ‘재판연구원→국선전담변호사→판사’ 시스템을 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양한 경력과 경험을 쌓은 법조인들 중에서 판사를 뽑는다는 법조일원화의 취지를 법원이 스스로 무색하게 만든다는 지적이다. 법원행정처는 2013년 대형 로펌들을 상대로 재판연구원 채용간담회를 개최하려다 변호사들의 반발로 중단한 바 있다.
법원행정처는 “지난해 국선전담변호사 채용 공정성 시비가 불거진 뒤 (평가자가 평가 대상자를 알 수 없는) 블라인드 면접을 도입했다. 면접위원 4명 가운데 2명은 법원 내부인이지만, 2명은 변호사와 교수 또는 시민단체 인사”라고 했다. 또 “지방변호사회가 추천한 2명의 변호사가 참여한 고법 국선변호운영위원회에서 서류·면접심사를 기초로 최종 선발자를 결정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 국선전담변호사는 “경력을 드러내고 하는 면접과 그렇지 않은 면접이 모두 이뤄졌다. 블라인드 면접이라도 같은 법원에서 근무한 재판연구원 출신의 얼굴을 몰라보겠느냐”고 했다. 서울고법 관계자는 “공익 활동을 한 변호사들이 경력을 드러내지 않으면 역차별을 받을 수 있어 ‘오픈 면접’도 같이 실시했다”고 밝혔다.
김한규 서울지방변호사회장은 “법원에서 국선전담변호사의 선발·인사에 관여하는 것은 부적절한 면이 있다. 변호사단체 등 제3의 기관에 맡기는 것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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