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수립돼 현행 교육정책의 밑그림을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 ‘5·31 교육개혁’이 올해 20년을 맞는 가운데, 그 공과를 평가하는 작업이 교육계를 중심으로 활발하다.
지난 22일 한국교육정치학회(회장 반상진 전북대 교수)가 ‘한국 교육정책 결정 구조의 정치학’을 주제로 연 춘계 학술대회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바탕한 5·31 교육개혁과 단절하려던 참여정부의 초기 노력이 실패로 귀결된 원인을 분석하는 논문이 발표됐다. 김용일 한국해양대 교수는 이날 발제한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 결정 구조’를 통해 “(참여정부의) 교육정책 결정 구조 역시 ‘국민의 정부’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관료 주도의 정책 결정 구조”였다면서 바로 여기에 “참여정부 중후반기가 되면 정책 내용 자체가 문민정부와 차별성을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질”된 원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5·31 교육개혁’은 1995년 5월31일 발표된 김영삼 정부의 교육개혁안으로 ‘교육대통령’을 자임했던 김영삼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설치한 대통령 자문 교육개혁위원회가 주도해 수립됐다. 미래 사회에 대비한 최초의 국가적 교육개혁이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지만 경쟁을 중시하는 기조가 교육 불평등을 심화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참여정부 교육정책의 두 얼굴
김용일 교수가 발제문에서 밝힌 참여정부 초기와 후기의 공식 문서들을 보면, 5·31 교육개혁에 대한 참여정부의 입장은 마치 전혀 다른 정권이 내놓은 교육정책 구상인 것처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왼쪽
“‘문민정부’ 교육개혁에 대한 심층적인 평가없이 무비판적 승계로 귀결…‘문민정부’에서 비롯된 세계화와 국가경쟁력 이데올로기, 신자유주의, 수요자 중심 논리가 더욱 강화되었음.”(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교육개혁과 지식문화강국 실현 T/F팀, 2003년 2월)
#오른쪽
“문민정부의 5·31 교육개혁 방안 이후 꾸준히 추진되어 온 수요자 중심 교육이 한국의 교육문화로 폭넓게 정착되도록 함. ‘수요자 관점’에서, 수요자가 교육의 중심이 되고 학습권을 행사하는 주체가 되는 미래를 준비….”(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2007년 10월)
시기별로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참여정부 초기 교육정책 기조가 드러나 있는 인수위 시절 자료를 보면 5·31 교육개혁과 그를 무비판적으로 계승한 전 정권에 대해 시종일관 비판적이다.
“‘선택과 집중’의 원리 내지 시장경제의 원리에 기초한 교육정책을 양산함으로써 지역 및 계층 간 교육 불평등과 사회적 갈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문민정부의 교육정책을 그대로 계승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국민의 정부’를 일궈낸 정치세력이 자신들의 국정철학에 걸맞는 교육정책을 개발하고 정책수행 환경을 조성하는 데 무능력하였음.”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교육개혁과 지식문화강국 실현 T/F팀, 2003년 2월)
하지만 5·31 교육개혁과의 단절을 시도하던 초기의 입장은 참여정부 후반, 청와대 교육비서관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5·31 교육개혁을 ‘성과’라고 표현하는 등 이를 계승하는 쪽으로 급선회한다.
“문민정부의 5·31 교육개혁, 국민의 정부의 제7차 교육과정 본격 적용 등 교육개혁의 기반을 구축하고….”(최경희 청와대 교육비서관, 한국교육개발원(KEDI) 교육정책포험, 2006년 8월)
“일부에서 거론되고 있는 평준화 정책의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공영형 혁신학교, 자립형 사립고 등의 운영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대통령자문정책기획위원회, 2007년 8월)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5·31 교육개혁안을 계승한 이유는 그 개혁안의 미래예측과 합리성에 동의했기 때문이다.”(정홍섭 제3기 교육혁신위원장, <대한민국 교육 40년>, 국정브리핑 특별기획팀)
대체 무슨 일이?…초심을 꺾은 변곡점 하나-결정적 시기를 놓치다
김용일 교수는 참여정부가 5·31 교육개혁과 단절하지 못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결정적인 시기’를 놓쳐버렸다는 점을 꼽았다. 김 교수가 말하는 ‘결정적인 시기’는 집권 초기를 말한다. 국민적 동의를 구하고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해 교육정책의 기조를 확립해야 할 중요한 시기에 청와대·교육혁신기구·교육부총리 등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5·31 교육개혁을 대체할 새로운 교육개혁의 중추적인 구실을 해야할 대통령 직속 교육혁신위원회는 위원장을 누가 하느냐의 문제로, 정부 출범 반 년이 지난 7월 말에야 발족할 수 있었다.
“청와대의 경우 ‘결정적인 시기(critical period)’에 교육(정책)을 전문적으로 다룰 단위가 없었다. 인수위 시절 복지 담당 전문위원으로 활동하던 행정관 등이 교육을 담당할 지경이었다.”
“2003년 5월이면 몇몇 사람들이 팀을 이루어 청와대와 함께 교육혁신기구를 구성하고 있던 시점이기도 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교육혁신기구를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하여 ‘강력한 추진력을 확보’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많았다. 교육문화수석제가 폐지된 상황이라 더 그랬다…무익한 가정이긴 하지만 이런 방향에서 교육혁신기구가 구성되었더라면 당연히 청와대와 교육부장관과 ‘삼각편대’를 이루어 교육정책 결정 구조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사 지체 등 여러 요인이 겹쳐 사태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2003년 7월31일 교육혁신위원회가 출범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참여정부의 교육정책 결정 구조 형성과 관련해서 시기적으로 너무 늦었다…위원장을 누구로 할 것인가 하는 데 있어 대통령과 개혁·진보세력 간에 입장 차이가 존재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던 것이다.”
“2005년 5월20일 전교조 초대 정책실장 출신이며 시인인 김진경이 교육비서관으로 임명된다. 이기준 부총리에 이어 김진표 부총리가 취임한 지 4개월 정도 경과한 시점의 일이었다…같은 정부에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인물을 교육부총리로 다시 발탁하면서 ‘돌려막기 인사’라는 비판이 일 정도였다. 참여정부의 인력풀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등 이미 정책 결정 구조 상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김진경 교육비서관도 정권 초기 흐트러진 교육정책 결정 구조를 추스르는 데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초심을 꺾은 변곡점 둘-실력이 없었다
김용일 교수는 참여정부의 교육정책 기조가 변질된 것과 관련해 교육개혁을 담당한 주체들의 무능을 또다른 원인으로 짚었다. 5·31 교육개혁을 대체할 새로운 교육개혁을 실천할 실력은 없으면서, 학연과 지연으로 요직을 차지하는 데 눈먼 이들이 청와대, 교육혁신위원회, 교육부총리 등을 주무른 탓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제 구실을 못하는 사이 정책 결정 과정에 오랜 기간 전문성을 축적한 관료들의 목소리가 커진 것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게 김용일 교수의 평가다. 실제 2004년 교육인적자원부는 교육혁신위원회 산하에 대학입학제도개혁특별위원회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처 내부에 대입개선 TF팀(입시개선팀, 내신평가팀, 특목고개선팀)을 구성, 독자적인 대입개혁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러한 ‘관료 주도의 정책 결정 구조’는 정책의 내용까지 좌우했고, 그 결과 참여정부의 교육정책 상당수가 문민정부 또는 국민의 정부와 뚜렷한 차별성을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로 변질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김용일 교수는 지적한다.
“교육혁신위원회가 2년 동안…교육정책 결정 구조에서 제자리를 잡지 못한 것이다. 대통령을 향해 ‘믿고 더 큰 힘을 실어주어야 하겠다’거나 집행부처에게 ‘교육혁신위원회의 의견을 더욱 존중해야할 것이다’라는 말은 세상물정을 모르는 서생의 푸념처럼 들린다…교육정책 결정 구조에서 교육혁신위원회가 더 큰 힘을 지니고 의견이 존중되고 말고는 오롯이 자신들의 실력에 달려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이 정권 교체기에 관료들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일정 기간 아주 신중하게 사태를 관망하는 모드로 돌입한다. 교육인적자원부도 마찬가지였다…집권 정치세력의 의중과 실력을 파악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청와대나 교육부총리 등의 행보에서 상대방의 ‘실력없음’을 파악하게 되고, 그에 맞는 대응을 해나가기 시작한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일로 세칭 ‘개혁·진보적 지식인’들이 관직을 사냥하는 모습은 수구·보수적 지식인들의 그것과 너무 닮아가고 있었다…더 중요한 문제는 ‘내가 어떤 자리를 차지하느냐’ 하는 것인데…그런 이들에게 정책 내용 상의 타협 내지 전향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지식인들이 능력을 고려치 않고 자리에 연연해하는 틈새를 관료권력이 치고 들어와 메운 것이다.”
진명선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선임연구원 torani@hani.co.kr
*한국교육정치학회 38차 춘계학술대회(한국 교육정책 결정 구조의 정치학)에서 김용일 한국 해양대 교수가 발제한 ‘노무현 정부의 교육정책 결정 구조’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구성.
*별도의 출처를 밝히지 않은 것은 발제문에 나온 김용일 교수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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