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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13살·15살 소녀 둘 성희롱 남성 왜 ‘무죄’가 됐나

등록 2015-06-01 20:24수정 2015-06-02 08:25

성추행. 한겨레 자료사진
성추행. 한겨레 자료사진
자기 바지속 손 넣고 만지며
“집 알았으니 다음에 또 보자”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
피해 학생 1명 법정출석 거부
1심선 경찰 진술조서 증거채택
항소심·대법원선 “법정 증언해야”
30대 남성, 결국 실형서 ‘무죄’로
“피해자 배려하지 않은 판결” 비판
10대 소녀들을 성희롱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던 30대 남성이 항소심과 대법원에서는 무죄가 선고됐다. 피해 학생이 법정에 나오지 않아, 경찰에서 한 진술을 증거로 쓸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판결을 두고 과도하게 ‘형식’에 매달린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지만, 수사 단계에서의 소홀함이 문제를 키웠다는 평가도 있다.

검찰의 기소 내용을 보면 윤아무개(32)씨는 2013년 7월 부산 온천동 골목길에서 ㄱ(당시 15살)양을 따라가 자신의 바지 속에 손을 넣고 성기를 만지며 “너희 집 알았으니 다음에 또 보자”고 말했다. 윤씨는 다른 날 골목길에서 귀가하는 ㄴ(당시 13살)양을 따라가 어깨를 두번 치고 “몇살이야? 그 나이 애들도 뽕을 넣고 다니냐”고 말했다. 윤씨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두 피해 학생은 경찰에서만 조사를 받았고, 법원에는 ㄴ양만 증인으로 나갔다. 수사기관의 진술조서는 작성자가 법정에서 “내가 작성했다”고 확인해야만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다만 사망·질병·소재불명 등의 이유로 당사자가 법정에 나오지 못하는 경우에 한해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이 특별히 믿을 만한 상황에서 한 것(‘특신상태’)으로 인정되면 예외적으로 증거로 쓸 수 있다.

ㄱ양은 1심 재판부의 네 차례 출석 요구를 거부했다. 1심 재판부는 피해학생이 극도로 불안해하고 피해학생의 어머니도 출석을 강하게 거부해 구인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ㄱ양의 경찰 진술조서가 특신상태에 해당한다며 증거로 채택해 윤씨에게 징역 6월을 선고했다. 범행 당시 윤씨는 비슷한 범죄를 이유로 집행유예 기간 중이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시험 준비와 불안감을 이유로 법정 출석을 거부한 ㄱ양의 경찰에서의 진술은 특신상태에 해당하지 않아 증거로 채택할 수 없고, 나머지 증거로는 혐의가 입증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윤씨는 법정에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다. ㄴ양은 법정에서 피해 사실을 증언했으나, 재판부는 수사 과정에서 ㄴ양에게 윤씨의 얼굴만 보여주고 범인 여부를 가리라고 한 것은 절차에 문제가 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도 5월14일 무죄를 확정했다.

대법원 판결이 알려지자 ‘절차만 따져 성추행범을 풀어줬다’, ‘피해자를 배려하지 않은 판결이다’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비공개나 화상 증언이 가능한데도 피해자가 출석을 거부했다.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도 포기할 수 없는 가치이므로, 피해자의 법정 증언이 없는 상황에서 경찰 진술조서만으로 엄한 처벌이 예상되는 범죄를 유죄로 인정하기 곤란하다”고 했다. 형사재판에서 증거 인정을 엄격하게 하지 않으면 억울하게 처벌받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경찰 초동수사가 문제란 지적도 나온다. ㄱ양이 경찰 조사를 받을 당시 영상녹화를 했더라면, 조사 당시에 동석했을 조력인이나 부모가 법정에 나와 증언하는 것으로 ㄱ양의 진술이 증거로 인정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은 성폭행 등에 비해 비교적 가벼운 사안으로 보고 영상녹화를 하지 않았고, 검찰도 경찰의 소홀한 수사를 거르지 않은 채 윤씨를 법정에 세웠다.

박혜영 서울해바라기센터 부소장은 “피해자는 성희롱을 당했을 뿐 아니라 협박성 발언도 들어 불안감이 매우 크기 때문에 법정에 나가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재판이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진행되지 않도록 검찰·법원이 노력해 피해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게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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