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빙그레’ 제공
이봉창기념사업회장 김호연 ‘빙그레’ 회장 인터뷰
“마라톤대회를 통해 이봉창 의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 세계인들한테도 한국의 민족정신을 알리는 대회로 키우고 싶습니다.”
올해 갖가지 광복 60돌 기념행사가 열렸다. 그러나 1932년 1월 일본 도쿄 왕궁 앞에서 일본 왕 히로히토 폭살을 시도하다 사형당한 이봉창 의사를 기억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이봉창의사 기념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호연(50) 빙그레 회장의 행보는 그래서 여느 기업과 기업인들의 사회공헌 활동보다 눈에 띈다.
김 회장이 이봉창과 인연을 맺은 것은 백범기념관 건립위원으로 있던 2001년으로, 1995년 출범한 기념사업회가 재정 문제로 유명무실하다는 사연을 듣고서부터다. 그는 사재를 털어 기념사업회 사무실을 마련하고 운영비도 지원해 왔다. 지난해 9월부터는 아예 기념사업회 회장직을 떠맡았다. 기념사업회는 9일 그의 순국일(10일)을 기념해 한겨레신문사와 함께 ‘광복 60주년 기념 이봉창 의사 마라톤대회’를 연다.
이처럼 이봉창을 기리는 일에 적극 나서는 이유에 대해 김 회장은 “사회에 공헌해야 할 분야가 많지만, 독립운동 정신을 계승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이 의사는 31살에 독립을 위해 몸을 바쳐 후손 없이 돌아가셨기에 나라도 그분의 뜻을 기리는 일에 나서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봉창에 대한 추모사업이 그의 의거 3개월여 뒤 중국 상하이 훙커우공원 의거를 감행한 윤봉길에 대한 것보다 상대적으로 초라한 것을 알고 의무감 같은 것을 느꼈다는 것이다.
김구의 손녀 김미(48)씨가 그의 부인이라는 인연도 있다. 이봉창은 김구의 지시로 한인애국단의 첫 거사를 감행했기 때문이다. “적국의 수괴를 도륙하기로 맹서하나이다”라고 김구 앞에서 선서하고 떠난 이봉창은 문초 과정에서 끝내 지시한 사람의 이름을 대지 않았다.
김 회장은 최근 <백범일지>와 <이봉창 평전>을 다시 꺼내 읽었다고 한다. “경영서적도 도움이 되지만, 개인과 기업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 회장은 김구재단을 통해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게 장학금도 지원하고 있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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