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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오늘 이거 처음 해봐”…독거 할머니들 마음에 활짝 꽃이 피었다

등록 2015-06-05 20:04수정 2015-06-06 15:52

서울 종로구 희망복지지원팀
기초생활수급 여성노인 대상
10주 자존감 향상 프로그램

석고로 얼굴 본 뜨고
전망대·미술관…세상 나들이
“삶 돌아보는 치유시간 됐기를”
서울 종로구에서 홀로 사는 여성 노인 11명이 지난 2일 부암동의 한 전통문화 공간에서 석고로 얼굴 본뜨기와 채색작업을 한 뒤 각자 만든 얼굴 석고를 들고 한자리에 모여 있다.(뒷줄 가운데 할머니는 얼굴 비공개를 원해 모자이크 처리했습니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 김상현씨 제공
서울 종로구에서 홀로 사는 여성 노인 11명이 지난 2일 부암동의 한 전통문화 공간에서 석고로 얼굴 본뜨기와 채색작업을 한 뒤 각자 만든 얼굴 석고를 들고 한자리에 모여 있다.(뒷줄 가운데 할머니는 얼굴 비공개를 원해 모자이크 처리했습니다.) 한겨레두레협동조합 김상현씨 제공
“편하게 누워서 석고로 얼굴 본을 뜨는 동안 도우미가 조물조물 얼굴을 만져줘 황홀하기까지 했어요.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위로받는 것 같았죠.”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전통문화공간 ‘무계원’에서는 홀로 사는 할머니 11명이 도우미들과 2인1조가 돼 자신의 얼굴을 석고로 뜨는 ‘얼굴 본뜨기’ 행사가 열렸다. 종로구 희망복지지원팀이 기초생활수급 할머니들을 대상으로 10주간 진행하는 자존감 향상 프로그램 ‘마음꽃이 피었다’의 한 과정이다. 프로그램에 참여한 김복순(79)씨는 “평소에 내 얼굴에 관심을 갖지 않아 거울도 잘 안 보고 살았는데, 이제는 얼굴 좀 보고 살아야겠다”며 웃었다.

종로구에는 모두 1664명의 홀로 사는 노인들이 있다. 이 가운데 여성은 1134명이다. 박현숙 종로구 희망복지지원팀장은 “혼자 사는 저소득 할머니의 경우 당뇨, 관절염 등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건강 악화는 심리적 위축으로 이어져 ‘은둔’하는 특성을 보이고, 우울증 발생 가능성도 높아 자살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있다. 박 팀장은 “할머니들을 세상 밖으로 나오도록 해 그런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소할 목적으로 10주짜리 프로그램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도우미로 나선 희망복지지원팀원들은 할머니들의 얼굴 위에 석고를 얹고 토닥이듯 본을 떴다. 편안하게 누운데다 기분까지 좋아진 한 할머니는 설핏 잠이 들어 코를 골기도 했다. 얼굴 본뜨기 작업이 끝나고 석고가 마르는 동안 할머니들은 근처 인왕산 전망대와 미술관을 다녀왔다. 도우미로 나선 최옥희(49)씨는 “내 짝꿍 할머니는 체격이 아이처럼 작다는 콤플레스 때문에 바깥출입을 꺼리시는 분이었는데, 막상 오시고 나서는 내내 즐거워하셨다”고 했다. 유지은(32)씨는 “할머니들이 자신의 얼굴 본을 만지며 아기를 처음 보듬은 엄마처럼 좋아했다”고 했다.

석고가 마르자 할머니들은 물감으로 자신의 얼굴 석고본에 색칠을 했다. 석고본 안쪽에 녹색 물감으로 크고 작은 동심원을 반복해서 그린 한 할머니는 “마음에 켜켜이 쌓여 있는 한을 그린 것”이라고 했다. 연꽃을 그린 할머니는 “내 마음에 부처의 마음 같은 연꽃이 피어 있다”고 했다.

얼굴 본뜨기 과정은 종로구에서 기초생활수급자 등에게 장례지원사업을 하는 ‘종로구 마을장례지원단’이 재능기부와 재료비 등을 지원해 이뤄졌다. 이 단체에 참여하고 있는 박진옥 ‘나눔과나눔’ 사무국장은 “오랫동안 홀로 살아온 어르신들이 얼굴 본을 뜨는 동안 스킨십을 통해 위로를 받고, 자신의 얼굴 석고를 보며 삶을 돌아보는 치유 시간이 됐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박현숙 팀장은 “기존의 노인복지는 개별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렇게 그룹으로 함께 하면 상담자가 예상치 못했던 역동적 변화들이 생긴다. 할머니들이 ‘오늘 처음 해본다’는 말씀들을 많이 하셨는데, 앞으로도 이런 첫 경험들을 더 제공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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