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윤언식(오른쪽 첫번째), 이향래(〃 두번째)씨 등 충남 예산군 광시면 대리와 시목리 주민 대표들이 마을 산이라고 적힌 옛 기록을 펼쳐보이며 백화산을 가리키고 있다.
현장 - 군청과 ‘사 소유권다툼’ 승소한 예산군 대리·시목리 주민들
“마을 산이 잿더미로 변한 것도 참담했지만 군유지라며 골프장 만든다고 하는 데는 억장이 무너지대유.” 충남 예산군을 상대로 마을 산을 찾기 위해 3년 동안 싸운 끝에 최근 고등법원에서 이긴 광시면 대리와 시목 1, 2리를 5일 찾았다. 주민들은 “그동안 속이 새까맣게 탔다”면서 순박한 농민들이 투사가 되어야만 됐던 까닭을 풀어 놓았다. 화마로 잿더미 변한 산 군청서 골프장 지으려
느닷없이 “군소유” 주장 대책위 꾸리고 마을소유 판결문 찾아
3년동안 법정투쟁 “힘없는 농민 깔보는 행정기관 책임 물어야죠” 120여 가구 320여명의 대리, 시목리 주민들에게 느닷없는 ‘관재수’가 닥친 것은 봄바람이 거세던 2002년 4월이었다. 청양 비봉산에서 시작된 산불이 주민들이 수백년 동안 산신제를 올리면서 애지중지 가꾼 마을 뒷산인 백화산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몇 달 뒤 예산군은 백화산 195만3600㎡에 2007년까지 27홀 규모의 골프장 등을 건설하겠다는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수십 년 걸리는 숲 복원보다는 차라리 골프장을 만드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개발 논리를 내세웠다. 주민들은 처음에는 군청 앞에 모여 “주민들이 신성시하는 산을 복원해 줄 것”을 요구하며 골프장 반대 운동에 나섰다. 청와대와 국민고충처리위원회 등에 복원을 요구하는 탄원서도 보냈지만 예산군은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예산군은 오히려 ‘백화산은 군유지’라며 1974년 군 소유로 등기한 서류를 내보였다. 또 ‘산이 마을 것이라면 법으로 찾아가라’고 몰아 세웠다. 이 때부터 주민들의 ‘마을산 되찾기’싸움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2003년 여름 주민들과 대전충남생명의숲, 대전충남녹색연합, 녹색연합 환경소송센터, 예산 전교조 등 환경·사회단체 등은 예산군 골프장 백지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윤언식(69) 대책위원장은 수소문 끝에 1908년(대한제국 융희 2년) 공주법원에서 백화산을 마을 산으로 판결한 문서를 대법원에서 찾아냈다. 그 해 12월 예산군을 상대로 ‘예산군 골프장 예정 터 소유권 이전등기 말소 청구’ 소송을 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대전지법 홍성지원은 ‘이유 없다’며 기각했다. 이에 예산군은 ‘소송비 책임져라’, ‘사업이 늦어져 피해가 수억원에 달하는데 손해 배상하라’는 비난과 함께 일부 주민을 위증으로 고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전고법 제1민사부(재판장 강영호 부장판사)는 지난달 20일 “마을주민 여러분이 이기셨습니다”며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1908년 판결과 1923년 일제 강점기 조선임야조사 당시 주민 청원으로 광시면 소유에서 대리, 시목리 소유로 바뀐 점, 주민들이 대대로 백화산에 산림감시원을 두고 관리한 점 등으로 미뤄 주민 공동체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판결했다. 예산군이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주민들은 잔치를 미뤘지만 마을 산을 가꿀 꿈에 부풀어 있다. “대법원 판결이 나고 등기가 이전될 때까지 마음을 놓지 않을 거구만유. 그 다음 행정기관이 힘없는 농민들을 상대로 벌인 사기극에 대한 책임도 묻고, 후손들에게 마을 산을 잘 가꿔 물려주기 위한 토론도 끝내야 하고 아직 할 일이 많아유.” 대리 이향래(65) 이장은 힘주어 말했다. 예산/글·사진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