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의 ‘학교폭력 정보관리 시스템 구축 제안 요청서’.
경찰이 전국 1만1500여개 학교의 학교폭력 가해자·피해자 신상정보를 데이터베이스(DB)로 한데 모으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 학교폭력 내용을 기재하는 것을 두고서도 교육현장에서 찬반이 갈리는 상황에서, 처벌 위주가 될 수밖에 없는 ‘학교 밖’ 경찰까지 ‘문제 학생’들의 신상정보를 수집하겠다는 것이다. 오는 9월 시스템 구축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정작 근거가 되는 법안은 국회 심사조차 시작되지 않았다.
15일 <한겨레>가 입수한 경찰청의 ‘학교폭력 정보관리 시스템 구축’ 제안요청서(사진)를 보면, 경찰은 1억2000만원을 들여 전국 초·중·고의 학교폭력 정보를 실시간 입력·관리·분석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사업을 지난 5월 입찰공고했다.
이 시스템이 구축되면 일선 경찰서의 ‘학교전담경찰관’ 1138명이 가해·피해 학생의 실명 등 신상정보와 학교폭력 유형, 사건 개요, 조처 결과 등을 일일이 입력하게 된다. 경찰이 운영하는 학교폭력 신고 및 상담 전화 ‘117’로 접수된 내용은 이 시스템과 자동으로 연동돼 입력된다. 학교별 폭력서클 구성원 정보, 재학중인 소년범 수도 이 시스템에 쌓인다. 이를 바탕으로 학교별 학교폭력 위험도를 ‘파랑·노랑·빨강’ 3단계로 구분해 관리하게 된다. 경찰은 이 시스템에 접속해 실시간으로 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는 인원을 3000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경찰청은 “기존에 학교전담경찰관이 손으로 작성해 관리하던 정보를 전산으로 입력해 효율성과 후임자 인수인계 편의성을 높이고, 학교 위험도별 맞춤 대응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손으로 작성하던 것을 전산화했을 뿐 큰 차이는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선 교육현장에서는 교육기관도 아닌 경찰에서 학생들 개인정보를 한곳에 집적하는 것은 ‘잠재적 범죄자군’을 예상하고 이를 관리하려는 인권침해적 발상이라고 지적한다.
송재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대변인은 “학생의 민감한 정보를 과도하게 집적하는데다, 가해학생을 잠재적 범죄자군으로 두고 향후 수사에 활용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것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했다. 교육계에서는 이명박 정부에서 도입한 학교폭력 학생부 기재 문제를 놓고도 지금까지 소송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송 대변인은 “학교폭력 현황은 이미 교육부의 ‘학교알리미’ 시스템을 통해 관리되고 있다. 교육 목적을 위해 수집된 정보는 기본적으로 학교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 시스템은 현재까지 법률적 근거가 없다. 경찰청 여성청소년과 관계자는 “학교전담경찰관 관련 법안이 통과될 것을 예상하고 미리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것이다. 법이 통과되기 전까지는 시스템에 학생 신상정보를 입력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했다. 경찰은 2013년 11월 발의돼 지난해 4월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회부된 ‘학교전담경찰관의 운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근거 법률로 들고 있다. 하지만 이 법안은 경찰청 예규로 운영되는 학교전담경찰관 업무를 법령으로 명확히 하려는 것일 뿐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뒷받침할 근거는 담고 있지 않다. 게다가 이 법안은 안행위에 상정만 됐을 뿐 한 차례도 심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관련 상임위인 교육문화체육관광위에서도 논의가 이뤄진 적은 없다.
교육부도 경찰의 학생 신상정보 데이터베이스화를 몰랐다고 한다. 교육부 학교생활문화과 관계자는 “경찰이 학교전담경찰관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사실은 알지만, 가해·피해학생 신상정보 입력 등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협의가 없어 몰랐다. 인권침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경찰청과 협의하겠다”고 했다.
박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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