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 운용을 위탁한 기관투자자들 몰래 증권사들에 채권을 사고 팔아 거액의 손실을 입힌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들이 검찰에 기소됐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부장 박찬호)는 채권파킹 거래로 펀드자금에 113억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배임)로 옛 아이앤지(ING) 자산운용(현 맥쿼리투자신탁운용) 전 펀드매니저 ㄷ씨를 구속기소하고 다른 펀드매니저 1명을 불구속 기소했다고 16일 밝혔다. 검찰은 이들에게 채권을 사고 판 증권사(키움·케이티비투자·신영·아이엠투자·동부·에이치엠시투자증권) 채권브로커 6명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파킹거래는 자산운용사가 보유하고 있는 채권을 증권사에 팔아 증권사 계정에 보관한 뒤 일정기간이 지나면 자산운용사 펀드매니저가 직접 사들이거나 다른 곳에 팔도록 하는 ‘부외거래’로, 이 과정에서 발생한 손익은 펀드매니저와 증권사 임직원이 상호정산한다. 펀드매니저는 채권을 증권사에 넘긴 만큼 펀드 운용한도를 초과해 운용할 수 있는데다 이익이 생기면 펀드 수익으로 처리할 수 있고, 증권사 채권브로커 입장에서도 중개수수료를 챙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나, 투자자와 자산운용사 사이의 투자일임계약을 위반한 것이므로 불법이다.
펀드매니저와 증권사 채권 브로커들은 2013년 5월부터 11월까지 채권 가격이 급락해 파킹채권을 보유하고 있던 증권사에 손실이 발생하자, 펀드매니저들은 채권을 시장가보다 싼 가격으로 증권사에 팔거나, 시장가보다 비싼 값으로 증권사로부터 사들여 증권사들의 손실을 만회해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학맥·인맥을 이용해 사설 메신저 등으로 거래를 해왔는데, 거래과정에서 증권사 직원이 채권가 하락을 걱정하자 펀드매니저는 증권사에 손실을 보전해주면서 메신저로 “괜찮아 뭐…내 돈도 아니고”라고 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은 또 증권사 채권브로커들이 펀드매니저에게 수년간 고가의 해외여행을 보내주는 등 향응을 제공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수·증재)를 잡고, 보험·은행·자금운용사 직원 10명과 증권사 채권브로커 10명도 불구속 기소했다. 이가운데는 3년간 6300만원의 해외여행경비를 받거나, 유흥업소 종업원을 동반해 일본여행을 다녀온 이들도 포함됐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지난 1월 옛 아이앤지 자산운용과 증권사 7곳의 채권 파킹거래 혐의에 대해 ‘업무 일부정지’ 및 ‘기관경고’ 등 조처하고 과태료를 부과하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그들만의 리그’처럼 폐쇄적으로 운영되던 장외 채권시장의 구조적 비리를 적발한 검찰의 첫 수사사례”라며 “채권시장의 잘못된 관행이 바로잡힐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박태우 기자 eh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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