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달 1일 한국 주둔 50년
경기 의정부·동두천 등에 배치된 주한미군 제2보병사단이 다음달 1일로 한국 주둔 50년을 맞는다. 미 2사단은‘한미동맹의 상징’으로 불리지만, 소속 장병들이 윤금이씨 살해 사건, 미군 궤도차량 여중생 압사 사건 등을 일으켜 한국 사회에 큰 상처도 줬다.
미 2사단 관계자는 “다음달 1일 한국 주둔 50년을 맞아 경기도 의정부시의 사단 사령부 캠프 레드클라우드에서 전우회 20여명과 지역주민 등을 초청해 기념행사를 연다”고 28일 밝혔다.
의정부·동두천 등 주한미군 40%
국군 1개 여단 편입 연합사단 확장
잔류 여단 신무기 공세적 강화 미선·효순 사건·윤금이 살해사건…
우월적 지위 ‘소파’ 개정은 미흡
‘살 곳 못 된다’ 불명예에 주민 신음 미군 관계자들은 한-미 협의 때“미 2사단이 아니라 한국군 2사단이라 부르자”고 말하곤 한다. 미 2사단이 1965년 7월1일부터 50년 동안 경기 문산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유사시 북한군 진격로에서 붙박이로 주둔하는 현실을 들춘 농담이다. 이 부대는 1950년 7월23일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1954년 8월 미국으로 돌아갔다. 동북아와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자 1965년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냉전이 끝난 90년대 이후 미2사단은 ‘미 육군에 마지막 남은 최전방 부대’다. 탱크, 장갑차, 야포 등으로 중무장한 미 2사단은 훈련강도나 전투력을 따지면 미 육군 안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부대다. 현재 의정부의 캠프 레드클라우드·캠프 스탠리, 동두천 캠프 케이시·호비, 평택 캠프 험프리, 성남 케이(K)-16 등의 기지에 1만명 이상이 주둔해 주한미군 전체병력의 40% 가량을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외교안보 당국자 등은 주력 부대가 한강 이북에 주둔한 미 2사단을 두고 ‘한미동맹의 상징’이라고 평가해왔다. 미 2사단이 한국 사회에 남긴 상처도 크다. 1992년 10월 동두천에서 술집 종업원으로 일하던 윤금이(당시 26살)씨가 미군 병사에게 잔혹하게 살해돼 미군 범죄 방지가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개정 목소리가 커졌다. 또 2002년 6월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56번 도로에서 당시 여중생 신효순·심미선 양이 미군 궤도차량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해 촛불집회가 전국으로 번지기도 했다. 미2사단은 애초 2016년까지 한강이남인 경기도 평택으로 모두 이전할 계획이었으나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정책에 따라 동두천 캠프 케이시·호비의 210화력여단을 2020년까지 남기기로 했다. 210화력여단은 유사시 북한군의 장사정포와 방사포 진지 등을 파괴한다. 1951년부터 시 면적의 42%(40.63㎢)에 미군기지가 주둔해온 동두천시민들은 210화력여단이 잔류하기로 하자 지난해 10월말부터 196일째 캠프 케이시 앞에서 규탄시위를 벌이고 있다. 동두천 미군재배치 범시민대책위원회 한종갑 위원장은 “지난 65년 동안 기지촌이란 오명 아래 주거·교육·환경이 훼손되고 개발제한으로 지역경제는 최하위권을 맴돌아 ‘사람 살 곳이 못된다’는 말을 듣고 살아왔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피해를 입어도 보상은 커녕 항의 한 번 못하고 살아온 동두천 주민을 두 번 죽이지 말라”고 말했다. 최근 미 2사단의 공세적인 전력증강 조처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미 2사단은 최근 다연장로켓대대를 비롯해 신형 탱크·브래들리 장갑차 등을 배치하고, 기갑전투여단 병력을 순환배치시키는 등 화력과 기동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3일엔 유사시 한국군 1개 여단이 미 2사단에 편입되는 한미연합사단이 출범했다. 한미연합사단은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하고 전시에는 핵 등 대량살상무기(WMD)를 제거하는 특수임무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고영대 평화통일연구소 상임연구위원은 “미 2사단이 군단급 규모로 전력을 강화시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기존의 훈련장이 새로운 무기체계를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고 훈련과 이동과정에서 사고 위험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의정부/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국군 1개 여단 편입 연합사단 확장
잔류 여단 신무기 공세적 강화 미선·효순 사건·윤금이 살해사건…
우월적 지위 ‘소파’ 개정은 미흡
‘살 곳 못 된다’ 불명예에 주민 신음 미군 관계자들은 한-미 협의 때“미 2사단이 아니라 한국군 2사단이라 부르자”고 말하곤 한다. 미 2사단이 1965년 7월1일부터 50년 동안 경기 문산에서 서울로 이어지는 유사시 북한군 진격로에서 붙박이로 주둔하는 현실을 들춘 농담이다. 이 부대는 1950년 7월23일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1954년 8월 미국으로 돌아갔다. 동북아와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자 1965년 다시 한국에 돌아왔다. 냉전이 끝난 90년대 이후 미2사단은 ‘미 육군에 마지막 남은 최전방 부대’다. 탱크, 장갑차, 야포 등으로 중무장한 미 2사단은 훈련강도나 전투력을 따지면 미 육군 안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부대다. 현재 의정부의 캠프 레드클라우드·캠프 스탠리, 동두천 캠프 케이시·호비, 평택 캠프 험프리, 성남 케이(K)-16 등의 기지에 1만명 이상이 주둔해 주한미군 전체병력의 40% 가량을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외교안보 당국자 등은 주력 부대가 한강 이북에 주둔한 미 2사단을 두고 ‘한미동맹의 상징’이라고 평가해왔다. 미 2사단이 한국 사회에 남긴 상처도 크다. 1992년 10월 동두천에서 술집 종업원으로 일하던 윤금이(당시 26살)씨가 미군 병사에게 잔혹하게 살해돼 미군 범죄 방지가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개정 목소리가 커졌다. 또 2002년 6월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56번 도로에서 당시 여중생 신효순·심미선 양이 미군 궤도차량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해 촛불집회가 전국으로 번지기도 했다. 미2사단은 애초 2016년까지 한강이남인 경기도 평택으로 모두 이전할 계획이었으나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정책에 따라 동두천 캠프 케이시·호비의 210화력여단을 2020년까지 남기기로 했다. 210화력여단은 유사시 북한군의 장사정포와 방사포 진지 등을 파괴한다. 1951년부터 시 면적의 42%(40.63㎢)에 미군기지가 주둔해온 동두천시민들은 210화력여단이 잔류하기로 하자 지난해 10월말부터 196일째 캠프 케이시 앞에서 규탄시위를 벌이고 있다. 동두천 미군재배치 범시민대책위원회 한종갑 위원장은 “지난 65년 동안 기지촌이란 오명 아래 주거·교육·환경이 훼손되고 개발제한으로 지역경제는 최하위권을 맴돌아 ‘사람 살 곳이 못된다’는 말을 듣고 살아왔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피해를 입어도 보상은 커녕 항의 한 번 못하고 살아온 동두천 주민을 두 번 죽이지 말라”고 말했다. 최근 미 2사단의 공세적인 전력증강 조처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미 2사단은 최근 다연장로켓대대를 비롯해 신형 탱크·브래들리 장갑차 등을 배치하고, 기갑전투여단 병력을 순환배치시키는 등 화력과 기동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 3일엔 유사시 한국군 1개 여단이 미 2사단에 편입되는 한미연합사단이 출범했다. 한미연합사단은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하고 전시에는 핵 등 대량살상무기(WMD)를 제거하는 특수임무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고영대 평화통일연구소 상임연구위원은 “미 2사단이 군단급 규모로 전력을 강화시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기존의 훈련장이 새로운 무기체계를 수용할 수 없는 상황이 빚어질 수 있고 훈련과 이동과정에서 사고 위험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의정부/글·사진 박경만 기자 ma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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