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문화연대 회원들이 서울 중구 광화문광장에서 ‘표현의 자유’를 위한 플래시몹을 하다 관리인에게 제지당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방심위, ‘명예훼손’ 심의 규정 개정…“표현의 자유 억압” 논란
“권력층에 대한 비판 위축시키는데 악용될라” 우려 목소리 커
“권력층에 대한 비판 위축시키는데 악용될라” 우려 목소리 커
인터넷 게시물을 심의하고 삭제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닌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명예훼손’ 사안에 대해 피해 당사자의 신청 없이도 심의를 진행할 수 있도록 심의규정 개정을 추진하고 있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데 악용될 수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심의규정이 이렇게 바뀌면, 대통령이나 고위공직자를 비판하는 글이 올라왔을 때 당사자가 나서지 않아도 수사기관 등의 심의 요청으로 게시물 삭제가 가능해진다.
8일 방심위는 9일 열릴 전체회의에서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이하 심의규정) 개정’을 보고안건으로 다룰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행 통신 심의규정 제10조 2항에는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 침해와 관련된 정보는 당사자 또는 그 대리인이 심의를 신청하여야 한다”고 돼 있는데, 이를 삭제하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현재 방심위는 당사자가 ‘명예훼손’ 심의를 신청할 때에만 심의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 조항을 삭제하면, 제3자의 신청만으로도 심의가 진행될 수 있다. 방심위가 명예훼손이라고 판단하면 게시물 삭제, 이용자 접속 차단 등의 조처를 취할 수 있다. 심의규정 개정은 방심위 전체회의에서 의결되면 별도 절차 없이 시행된다.
방심위는 “현재 심의규정의 상위법이라 할 수 있는 ‘정보통신망법’이 명예훼손을 친고죄가 아닌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친고죄’ 취지로 돼있는 심의규정 역시 이에 맞춰 개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형법에도 명예훼손은 ‘반의사불벌죄’로 규정돼 있다. ‘친고죄’는 피해자가 신고를 해야만 공소 제기가 가능하고,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하지 않지만 피해자 고소가 없어도 공소 제기가 가능하다. 방심위 관계자는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새누리당에서 이와 같은 지적을 했기 때문에 내부 논의를 거쳐 추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번 개정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확대하려는 시대적 흐름을 역행할 뿐 아니라 권력층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 9월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을 모독하는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고 말한 뒤, 검찰이 ‘명예훼손 전담팀’을 꾸려 “고소가 없어도 명예훼손에 대해 ‘선제적 대응’을 하겠다”고 나선 바 있다. 정민영 변호사(법무법인 덕수)는 “자신이 직접 나서지 않고 제3자의 손을 빌려 ‘명예훼손’ 주장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정치인, 고위공직자, 기업가 등 ‘권력층’이다. 이제 통신 심의까지 권력층에 대한 비판을 위축시키는데 이용되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제2기 방심위 심의위원을 지낸 박경신 고려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명예훼손에 대한 형사 처벌 남용이 심각해, 반의사불벌죄를 친고죄로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방심위는 오히려 이를 역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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