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님이 아주 ‘배수의 진’을 치신 듯한 느낌을 받네요.”
2009년 4월28일 한국석유공사 이사회에서 최종원 이사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애초 석유공사가 설정한 2009년 석유 생산량은 2368만배럴인데, 이사회에서 전년 실적의 2배가 넘는 3520만배럴로 목표치를 대폭 올린 것을 두고서다. 강영원(64) 당시 석유공사 사장의 뜻이 관철된 결과다.
석유공사는 강 전 사장이 취임한 2008년 정부 경영평가에서 기관장은 ‘보통’, 기관은 ‘C’ 등급을 받았다. 생산량 등 경영목표가 달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석유공사는 생산량을 늘리려고 스위스 석유회사 인수를 준비했다. 그런데 중국 업체가 이를 사기로 해, 또 생산 목표 미달 위기에 빠졌다.
다급해진 강 전 사장은 캐나다 석유회사 ‘하베스트’ 인수를 추진했다. 하베스트는 정유 자회사 ‘날’을 함께 인수해주길 원했다. 하지만 석유공사 자문사 메릴린치 등은 부정적이었다. 하베스트만 인수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던 협상은 2009년 10월16일 하베스트가 날도 함께 사라고 강하게 요구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하베스트는 ‘10월21일까지 전체 인수를 결정하면 독점 협상권을 주겠다’고 했다.
강 전 사장은 협상이 일단 결렬된 다음날인 10월17일 친구인 나완배 지에스(GS)칼텍스 사장에게 “날의 자산가치가 얼마나 되냐”고 물었다. 직원들을 캐나다로 보내 평가한 지에스칼텍스 쪽은 “가동률을 제외한 분야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서를 보내왔다. 하지만 석유공사는 10월21일 하베스트와 날을 함께 인수하는 계약을 맺고, 외국 언론들은 “바가지를 썼다”는 식의 기사를 내보냈다.
2009년 10월29일 이사회에서 석유공사 감사팀은 ‘날 인수 타당성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지만, 강 전 사장은 요지부동이었다. 결국 여기에서 하베스트와 날을 4조5650억원에 인수하기로 확정됐다. 날 인수에만 1조3700억원이 들었다. 목표 생산량을 채우자, 강 전 사장은 그해 정부 경영평가에서 ‘양호’, 석유공사는 ‘A’ 등급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석유공사는 지난해 8월 날을 고작 329억여원에 팔아야 했다. 한순간의 잘못된 거래로 인수액 대부분을 날린 셈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임관혁)는 하베스트 고가 인수로 석유공사에 5513억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배임)로 강 전 사장을 구속 기소했다고 20일 밝혔다. 검찰은 석유공사가 당시 주당 7.3캐나다달러였던 하베스트를 10캐나다달러씩에 인수했다며 그 차액인 5513억원을 손해액으로 판단했다. 기관장 평가를 의식해 국부를 허망하게 날린 책임을 뒤늦게 물은 것이다.
정환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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