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도에 있는 포스코건설 본사 사옥.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3월13일 포스코건설 압수수색을 신호탄으로 시작된 포스코그룹 비자금 수사가 어느덧 4개월을 훌쩍 넘겨 진행되고 있다. 그간 포스코 임원과 협력업체 대표 등 13명이 구속됐다. 하지만 검찰은 아직 갈 길이 멀다며 사실상 ‘연중 수사’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신속하게 환부를 도려내고 빠지는 기존 특별수사 방식과는 딴판이어서, 특별수사의 패러다임이 변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과 함께 그 배경에 대한 의문이 생겨나고 있다.
그동안 임직원 등 13명 구속
포스코건설 압수수색으로 시작
건설 현장마다 비자금 포착
주요 협력업체로도 수사 넓혀 배성로 영남일보 회장도 곧 소환
결국 정준양 전 회장 향할 전망 검찰 “적폐 해소될 때까지 수사” 국민기업 바로세우기 등 명분
환부만 신속히 도려내던
기존 특별수사 방식 깨 ■ 넉달째 실무자만 조사·처벌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조상준)는 포스코 본사에 앞서 포스코건설 토목사업본부 결재 라인을 따라 수사를 진행해왔다. 베트남과 인도 등 건설 현장마다 수억~수십억원대 비자금이 조성된 혐의가 포착됐고, 전·현직 토목사업본부장 4명 가운데 3명이 구속됐다. 검찰은 비자금 조성과 협력업체 선정 과정에 정동화(64)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이 관여한 것으로 보고 5월20일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이후 검찰은 토목과 더불어 포스코건설의 양대 축인 건축사업본부 쪽으로 수사의 물꼬를 돌렸다. 그 결과 최근 포스코건설 협력업체인 대왕조경과 길보조경을 압수수색하고, 21일 이들을 협력업체로 선정해주는 대가로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시대복 포스코건설 사장고문역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22일에는 정 전 부회장을 다시 소환조사할 예정이다. 포스코그룹의 주요 협력업체들 수사도 병행됐다. 회삿돈 수백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박재천(59) 코스틸 회장, 전정도(56) 세화엠피 회장이 구속 기소됐고, 포스코건설 협력업체인 동양종합건설의 대주주인 배성로 <영남일보> 회장이 소환을 앞두고 있다. 이런 수사는 결국 정준양(67) 전 회장이라는 ‘본류’를 향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화된 수사에 서서히 회의론도 일고 있다. 애초 포스코 수사가 시작되자 언론은 포스코와 전 정권 실력자들의 유착 의혹 등이 밝혀질지에 관심을 보였다. 이는 정준양 전 회장 너머를 상정한 것이지만, 수사팀의 칼끝은 아직도 실무진과 협력업체들 앞에만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 기마전 대신 백병전 방식 특별수사?
특별수사는 보통 ‘일정 기간 내사→전격 압수수색→관련자 소환→책임자 소환 및 처벌’ 순서로 진행된다. 압수수색과 동시에 공개수사로 전환되고 그 뒤 책임자 소환 및 신병처리 결정까지 짧으면 한달, 길어야 두세달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번 수사는 넉달이 넘도록 압수수색과 실무자 소환을 반복하고 있다. 기존 특별수사가 주요 거점을 빠르게 타격하고 돌아오는 기마전이었다면, 포스코 수사는 한발씩 나아가는 백병전에 비유할 수 있다.
지금껏 진행된 것만으로도 ‘연중 수사’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은데, 검찰은 포스코가 ‘정상화’될 때까지 수사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시추공을 여러 곳에 꽂아놓은 상황이다. 곳곳에 쌓인 적폐가 해소될 때까지 수사는 계속된다”고 말했다. 대검에서도 “올해 내내 하게 될 것 같다”는 말이 흘러나오고 있다.
여기에는 포스코의 독특한 위상도 일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포스코는 대일청구권 자금과 ‘제철보국’이라는 이념으로 일궈낸 국민기업 성격이 크다. 그런데 이를 주인 없는 기업처럼 여겨서 생긴 적폐가 너무 쌓였다”고 말했다. 포스코의 각종 의혹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2012년에 이뤄진 일들과 관련돼 있다. 정 전 회장 선임 과정에서도 당시 정권 실세의 입김이 있었다는 뒷말이 나왔다. 결국 ‘국민기업 바로세우기’와 ‘전 정권 적폐 청산’이라는 두가지 명분 아래 수사는 장기화하고 있다.
■ 외과수술론은 일단 접어놓는다?
문제는 이런 수사가 검찰 스스로 지양했던 방식이란 점이다. 검찰에서는 곪은 부위만 신속히 도려내는 ‘외과수술식 적출론’을 특별수사의 모범답안처럼 여겨왔다. 특히 김진태 검찰총장은 ‘메스 대신 해머를 들이대는’ 일부 특수통 검사들의 독선과 오만을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경제계 쪽의 불만도 부담이다. 잇따라 기업 수사가 진행되면서 경제계에서는 동병상련의 처지에서 이 수사를 바라보고 있다.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근 업황이 좋지 않은데다, 현대제철과의 경쟁도 치열해지는 상황인데 수사로 경영 역량이 저하되면 어려움을 겪는 것은 당연하다”며 “감사를 통해 개선할 수 있는 부분과 수사를 통해 처벌받아야 할 부분이 섞여 있을 텐데, 그런 구분이 없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검찰에서는 ‘우리라고 수사 장기화를 원하겠나’라는 반응도 나온다. 기업 수사는 그 대상이 수사에 협조할 것은 협조하고 시정 대책도 내놓으면서 일정한 수준에서 검찰의 ‘출구전략’을 마련해주는 측면이 있는데, 포스코는 방관자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비리와 무관하지 않은 ‘정준양 체제’의 주축 인사들이 현 경영진에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수사가 늘어지는 경향이 있어 우리도 눈감고 지나치고 싶지만 도처에 있는 비자금 웅덩이들이 눈에 밟혀 속도를 내기 곤란한 상황”이라며 “우리도 외과수술식 수사를 하고 싶지만 온몸에 종양이 번져 수술이 길어지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노현웅 박현정 기자 goloke@hani.co.kr
건설 현장마다 비자금 포착
주요 협력업체로도 수사 넓혀 배성로 영남일보 회장도 곧 소환
결국 정준양 전 회장 향할 전망 검찰 “적폐 해소될 때까지 수사” 국민기업 바로세우기 등 명분
환부만 신속히 도려내던
기존 특별수사 방식 깨 ■ 넉달째 실무자만 조사·처벌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조상준)는 포스코 본사에 앞서 포스코건설 토목사업본부 결재 라인을 따라 수사를 진행해왔다. 베트남과 인도 등 건설 현장마다 수억~수십억원대 비자금이 조성된 혐의가 포착됐고, 전·현직 토목사업본부장 4명 가운데 3명이 구속됐다. 검찰은 비자금 조성과 협력업체 선정 과정에 정동화(64)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이 관여한 것으로 보고 5월20일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됐다. 이후 검찰은 토목과 더불어 포스코건설의 양대 축인 건축사업본부 쪽으로 수사의 물꼬를 돌렸다. 그 결과 최근 포스코건설 협력업체인 대왕조경과 길보조경을 압수수색하고, 21일 이들을 협력업체로 선정해주는 대가로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로 시대복 포스코건설 사장고문역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22일에는 정 전 부회장을 다시 소환조사할 예정이다. 포스코그룹의 주요 협력업체들 수사도 병행됐다. 회삿돈 수백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박재천(59) 코스틸 회장, 전정도(56) 세화엠피 회장이 구속 기소됐고, 포스코건설 협력업체인 동양종합건설의 대주주인 배성로 <영남일보> 회장이 소환을 앞두고 있다. 이런 수사는 결국 정준양(67) 전 회장이라는 ‘본류’를 향하고 있다. 하지만 장기화된 수사에 서서히 회의론도 일고 있다. 애초 포스코 수사가 시작되자 언론은 포스코와 전 정권 실력자들의 유착 의혹 등이 밝혀질지에 관심을 보였다. 이는 정준양 전 회장 너머를 상정한 것이지만, 수사팀의 칼끝은 아직도 실무진과 협력업체들 앞에만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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