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실·화장실 갖춘 온돌방
폭염 사망 잇따르는 상황속
“예산부족” 겨울에만 문열어
폭염 사망 잇따르는 상황속
“예산부족” 겨울에만 문열어
전국 곳곳에 폭염주의보가 내려진 5일 낮, 서울 영등포역 주변 노숙인들이 뙤약볕 아래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3년 전 중소기업에서 해고된 뒤 노숙 생활을 시작한 정아무개(50)씨는 땀이 비 오듯 흐르자 러닝셔츠를 가슴까지 끌어올린 채 아스팔트 위에 누워 손부채질을 시작했다. 그는 “날씨가 너무 더워 씻을 수 있는 이동목욕차만 기다린다”고 했다.
낮 1시께가 되자 한 사설 복지회에서 운영하는 ‘사랑나눔 이동목욕’ 버스가 도착했다. 3시간가량 차를 대놓는 동안 근처 노숙인 20여명이 찾아왔다. 이동목욕차 기사 오재섭(54)씨는 “일주일에 세 번 가장 더운 낮 1시께 노숙인들이 많은 영등포역 인근에 차를 댄다. 날이 더우니 찾는 이들이 늘었는데 단골로 오는 분들이 매번 반가워한다”고 전했다.
목욕버스 바로 옆에는 26.4㎡ 규모의 온돌방 두 칸과 샤워기 두 개를 갖춘 샤워실, 화장실까지 갖춘 노숙인 대피시설인 ‘응급구호방’이 있다. 그러나 응급구호방 문은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다. 이 시설을 위탁운영하는 서울시 희망지원센터의 강승남 상담원은 “지난해 가을 서울시 지원으로 응급구호방을 지었다. 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3월까지만 운영한 뒤 문을 닫았다. 에어컨만 설치한다면 뙤약볕에 거리에 앉아 있는 노숙인들에게 쉼터가 될 수 있을 텐데 아쉽다”고 했다. 이 응급구호방을 관리하는 영등포구청 사회복지과 강현숙 과장은 “노숙인들의 동사를 막기 위한 취지로 세워져 여름에는 운영하지 않는다. 지난해 세워진 만큼 상황을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 발생 소식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문 닫힌 응급구호방을 지켜보는 이들은 답답하다는 입장이다. 경찰은 영등포역 주변 노숙인들이 600~700명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폭염이 이어지는 기간에는 한시적으로 영등포역 주변에 4개의 노숙인 쉼터를 운영하지만, 경찰에서는 여전히 거리에 누워 있는 이들이 많아 열사병 등의 사고를 우려한다.
민경천 영등포경찰서 생활안전과장은 “영등포역 노숙인들은 물론 근처 쪽방촌에 사는 노인들도 폭염에 건강이 위험한 상황인데 샤워시설을 갖춘 응급구호방이 상시적으로 운영되면 좋겠다”고 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