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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쪽방촌서 ‘삶의 얘기’ 긷는 형제들

등록 2015-08-06 20:18수정 2015-08-07 14:54

쪽방촌 독거노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 있는 도서출판 ‘큰글사랑’의 조찬형(왼쪽), 조우형씨가 6일 오후 자신들의 취재 지역 중 하나인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쪽방촌 독거노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고 있는 도서출판 ‘큰글사랑’의 조찬형(왼쪽), 조우형씨가 6일 오후 자신들의 취재 지역 중 하나인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독거노인 사연 책 기획한 형제들
“그리운 재동씨, 많이 보고 싶고 또 미안합니다….”

조우형(31)씨는 지난달 서울 동자동 쪽방촌에서 만난 김아무개(80)씨한테서 손글씨 편지 한 장을 건네받았다. 김씨는 오래전 친구인 재동씨 이야기를 꺼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전란이 한창이던 1950년 용두다리 밑에서 재동씨를 만나 함께 종이를 줍고 껌을 팔면서 지냈다고 한다. 자신을 살뜰히 챙기던 친구 재동씨는 얼마 뒤 “고맙고 미안하다”는 말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그 뒤로 죽음에 관심을 가진 김씨는 장의사가 됐다. 재동씨와의 추억을 편지에 담아 부친 김씨는 “만일 저승이 있다면 당신이 그곳에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당신을 만날 수 있을 테니까요…. 사무치게 보고 싶습니다”라고 글을 맺었다.

윤리교사를 꿈꾸는 우형씨와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인 형 조지형(34)씨, 배우인 사촌동생 조찬형(31)씨는 지난 2월부터 서울 동자동과 영등포역, 대전역 주변을 다니며 독거노인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있다. 이미 공책 세 권에는 독거노인 15명의 이야기가 빼곡히 채워졌다. “한때는 열정적인 사랑을 했고, 자식들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했던 우리 이웃인 독거노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지형씨 이야기에 동생들이 뜻을 모으며 시작한 일은 어느새 독거노인의 사연을 담은 책을 내는 출판사(큰글사랑)까지 차리기에 이르렀다.

조지형·우형 형제와 사촌 찬형씨
동자동·영등포역 쪽방 찾아다녀

“그냥 우리와 함께 사는 어르신
조금이라도 관심 기울였으면”

6일에도 우형·찬형씨는 동자동 쪽방촌을 찾았다. 지금은 이들을 제법 반갑게 맞아주는 쪽방촌 어른들이 있지만, 독거노인들의 마음을 열기는 쉽지 않았다. 우형씨는 “책을 내기 위한 목적으로 갔다는 게 늘 죄스러웠다. 매일 찾아가 말벗을 해드리고 밤에 무섭다는 어르신을 뵈러 달려가고 하다 보니 어느 순간 툭툭 인생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셨다. 우리 책은 망할 수도 있지만 언제든 말벗은 돼드리겠다는 약속을 드렸다”고 했다. 그 뒤 영등포역 쪽방에서 만난 이아무개(76)씨는 인삼 농사를 지으며 한때 자식들의 존경을 받던 자랑스러운 지난날을 이야기해줬다. 쪽방촌에서 ‘코주부 할아버지’로 통하는 김아무개(67)씨는 동네 아이들을 괴롭히던 ‘호랭이 패거리’를 물리쳤던 남대문 주먹패 시절을 세세하게 전했다.

이들은 보통 책보다 글씨 크기를 키워 책을 낼 생각이다. 눈과 귀가 어두워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기 어려운 친할머니에게 옛날 소설들을 큰 글씨로 뽑아 드린 경험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큼지막한 글씨에 담긴 독거노인들의 이야기는 9월 중순께 세상에 나온다. 우형씨는 “나 스스로 어르신을 만나며 느꼈던 것처럼, 특히 젊은 독자들이 독거노인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냥 우리와 함께 사는 어르신’이라고 느끼고 조금이라도 관심을 기울이게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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