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에서 전기시설 보수 업무를 하는 ㄱ(53)씨는 20년 동안 매일 아침 자가용을 몰고 관악캠퍼스로 출근해왔다. 근무일이면 ㄱ씨는 집보다 서울대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서울대의 ‘주차권 발급 시스템’에서 그는 일반 직원보다 5배 많은 주차요금을 내야 하는 ‘상시출입업자’로 분류돼 있다. ㄱ씨는 서울대의 외주업체인 백상기업의 직원일 뿐 서울대 구성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ㄱ씨는 “주차요금이 부담스러워 학내 건물에 진입하지 않고, 캠퍼스 순환도로에만 차를 댈 수 있는 좀더 저렴한 주차권을 끊는다”고 했다.
서울대에서는 차량 앞유리에 붙은 주차권이 곧 ‘신분’을 나타낸다. 학내 교통관리위원회(위원장 유근배 기획부총장)가 교수·직원·학생 등 직책에 따라 1~5군으로 나눠 색깔로 구분한 정기주차권을 발급하기 때문이다. 교수는 파란색(1군), 직원은 초록색(2군), 장애인·국가유공자는 짙은 갈색(3군), 대학원생은 분홍색(4군) 주차권을 준다. ㄱ씨 같은 외주업체나 임대·공사업체 직원들은 5군으로 분류해 회색 주차권을 준다. 교직원이 받는 2군 주차권은 월 1만원만 내면 되지만, 5군은 5만원을 내야 한다.
외주업체 직원의 주차권 신청 절차도 다르다. 서울대는 정규직, 비정규직(자체 직원), 외주용역직으로 구분해 주차 등록 신청서를 받는다. 직원들은 주차권을 사는 데 필요한 근로계약서나 발령 공문, 외주 용역회사의 재직증명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난감한 일을 겪기도 한다. 서울대의 한 기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ㄴ(29)씨는 “주차권 신청을 위해 재직증명서를 떼어 갔는데, 고용형태가 명시된 근로계약서가 있어야만 발급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근로계약서가 없고 연봉계약서만 있는데, 주차권을 사는데 연봉까지 공개해야 한다니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서울대 캠퍼스관리과 관계자는 “교내 주차 공간이 협소하기 때문에 교통관리위원회에서 이용 대상자를 분류해 놓았는데, 서울대 총장이나 기관장이 발령내지 않은 직원들은 외부인으로 보고 5만원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대보다 규모가 작아 주차 공간 부족 문제에 시달리는 다른 도심 캠퍼스에서는 이런 ‘주차 신분제’를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고려대(월 1만원)·이화여대(월 4만원)는 정규직과 용역직원 구분 없이 주차권을 발급한다. 한양대도 구분 없이 월 1만5000원을 받고 있으며, 숭실대는 월 1만원이다. 서울시립대도 월 2만5000원에 직원 누구나 주차정기권을 살 수 있다.
김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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