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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강사도 주민, 수강생도 주민…관리사무소에 차린 ‘미용교실’

등록 2015-08-23 20:17수정 2015-08-24 10:11

서울 서초구 양재2동 에스에이치(SH)양재리본타워 2단지 아파트 마을공동체 ‘간지 아티스트’ 모임 수강생들과 강사가 지난 18일 수업을 마친 뒤 환하게 웃고 있다.
서울 서초구 양재2동 에스에이치(SH)양재리본타워 2단지 아파트 마을공동체 ‘간지 아티스트’ 모임 수강생들과 강사가 지난 18일 수업을 마친 뒤 환하게 웃고 있다.
삭막한 아파트에 싹튼 ‘마을 공동체’
“남편이나 아들의 뒷모습을 떠올려보세요. 자, 이 동작이 ‘싱글링’입니다. 싱글링을 잘해야 커트가 완성돼요.”

30년 경력 미용사 주민 초빙
“강의 나오면서 이웃간 친해져”
어르신들에 미용 봉사도 계획

강사의 설명에 따라 수강생들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마네킹의 머리카락에 서툴게 가위를 댔다. 설명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모두 진지한 표정이다. “뭐가 다른 거죠?” 가위질을 멈춘 한 수강생이 마네킹 머리를 나란히 놓은 채 고개를 갸우뚱댔다. 휴대전화를 꺼내 마네킹의 머리 모양을 꼼꼼히 사진으로 담는 이들도 있었다.

지난 18일 오전 뜨거운 열기 속에 미용 강의가 열린 곳은 미용학원이 아닌 아파트 관리사무소였다. 서울 서초구 양재2동 에스에이치(SH)양재리본타워아파트 2단지 관리사무소에서는 마을공동체 ‘간지 아티스트’의 미용 강의가 한창이었다. “머리를 인위적으로 만들려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여덟 번째 강의의 실습 주제는 남성의 짧은 머리를 뜻하는 ‘레이어드 커트’였다. “바리캉(이발기)보다 가위질을 잘해야죠. 미용실 가서 ‘바리캉 말고 가위로만 해주세요’라고 하면 미용사 실력이 금세 드러나요.”

주민 12명 앞에서 강의를 한 경력 30년차 미용사 구영애(52)씨도 이 아파트 주민이다. 그는 두 달 전 최신형(34)씨 등 주민들한테서 강사로 나서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멋스러운 예술가라는 뜻을 담은 ‘간지 아티스트’ 모임을 처음 제안한 최씨는 “한 아파트에 사는 이웃들끼리 결속감이 없어 늘 안타까웠다. 마침 이웃에 경력 30년의 베테랑 미용사가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분을 강사로 초빙해 미용기술을 배우면서 함께 소통하는 모임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고 했다.

주민들은 서초구청에 ‘우리마을 지원사업’을 신청해 사업비 100여만원도 따냈다. ‘너희 집 미용실이니? 아빠 엄마 헤어디자이너’라는 제목을 단 강의 공고문을 아파트 단지에 붙이자 수강생들이 찾아왔다. 지금은 구청에서 운영하는 17개 마을공동체 지원사업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사업으로 꼽힌다.

주민들은 수강을 넘어 봉사활동도 계획하고 있다. 다음달 15일 강의가 끝나면 아파트 노인정 어르신들에게 한가위맞이 미용 봉사를 하기로 했다. 유일한 남성 수강생 조용중(33)씨는 “원래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아파트 생활을 해왔는데, 강의에 나오면서부터 이웃들과 안면을 트고 지내게 됐다. 서울의 일반적인 아파트 생활 같지 않게 느껴져 좋다”고 했다.

자주 봐도 서로 생면부지처럼 대하는 아파트 생활의 현주소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여성가족부가 2010년 전국 2500가구 4754명을 대상으로 한 ‘가족실태조사’를 보면, 이웃에게 일상적 도움을 요청해본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있다’고 답한 비율이 대도시의 경우 25.6%에 불과하다.

최씨는 “우리 아파트에는 아기 키우는 대가족이나 다둥이 가족이 많은데도 서로 교류가 적었다. 그래도 강의를 계기로 이웃들이 자주 얼굴을 보고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글·사진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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