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운영 일당 구속…판돈 1354억
지난 4월28일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발렌시아 대 그라나다의 경기. 발렌시아가 전후반 각각 2골을 몰아넣어 4 대 0으로 완승했다. 같은 시각 중국 선양의 한 아파트에 콜센터를 둔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 운영자들이 바삐 움직였다. 도박 사이트 회원들은 경기의 승패와 무승부 여부, 누가 선제골을 넣는지, 홈·원정 구분 등 갖가지 경우의 수에 돈을 걸었다. 도박 사이트 운영진은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웬만한 프로스포츠 경기들도 모두 도박판에 올려놨다. 심지어 독일·영국·프랑스 등 유럽 증시의 종가 끝자리가 홀수인지 짝수인지를 두고도 돈을 걸게 했다.
이 도박 사이트는 국내 30개 불법 스포츠도박 사이트 관리를 위탁받은 박아무개(45)씨가 2013년 8월부터 총괄 운영해왔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박씨, 그에게 도박 사이트 운영을 맡긴 이아무개(44)씨 등 4명을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고, 회원 관리를 맡은 황아무개(46)씨 등 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23일 밝혔다. 또 도박을 한 최아무개(23)씨 등 4명을 같은 혐의로, 판돈 입금용 ‘대포통장’을 제공한 차아무개(24)씨 등 99명은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유럽 축구리그, 미국 메이저리그(MLB)와 프로농구(NBA) 등 국내외 프로스포츠 경기 내용을 망라해 온라인 도박판을 설치한 박씨 등은 대포통장으로 2만여명한테서 판돈 1354억원을 입금받았다고 한다. 경찰은 “사이트를 직접 운영하면 서버 관리비, 콜센터 설치비, 인건비 등 많은 자금이 들어 박씨 같은 위탁운영 전문가가 일체의 불법행위를 대신 해주고 수수료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박씨와 도박 사이트 ‘실소유주’들은 240억원의 수익을 2 대 8로 나눴다고 한다.
합법 스포츠토토는 1회 베팅액이 100만~10만원이지만, 박씨 등이 운영한 불법 도박 사이트는 상한선이 없었다. 최대 1000만원짜리 베팅도 있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대부분의 회원이 돌려받은 돈보다 입금액이 많다. 실제 돈을 딴 사람은 100명 이하로 추정된다”고 했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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