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김성광 기자 flysg2@gmail.com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권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기존 판례를 고수하기로 결론을 냈지만, 무시할 수 없는 사회 변화상도 반영됐다. 13명 중 유책배우자도 이혼 청구를 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낸 것은 민일영·김용덕·고영한·김창석·김신·김소영 대법관으로, 다수의견 쪽 7명 가운데 1명만 소수의견 쪽으로 갔어도 판례가 바뀔 수 있었다.
소수의견은 ‘혼인관계의 실질’ 그 자체에 집중해 ‘파탄주의’로의 판례 변경을 주장했다.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먼저 ‘혼인관계의 외형’만 남아있는 부부관계를 유지해야 할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혼인관계의 실질은 애정을 바탕으로 공동생활을 하는 정신적·육체적·경제적 공동체인데, 이런 관계는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혼인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시각이다.
이번 사건 주심인 김용덕 대법관 등 6명은 판결문에서 “혼인생활의 회복이 불가능해 부부공동생활체로서 혼인의 실체가 완전히 소멸했다면 이는 실질적인 이혼상태와 다름없으므로 그에 맞게 법률관계를 회복·정리해 주는 게 합리적”이라고 했다. “외형뿐인 혼인관계를 계속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일방 배우자한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소수의견은 또 이혼 재판에서 ‘유책주의’ 고수가 오히려 불화를 더 키울 수도 있다고 봤다. 재판을 통해 이혼하기 위해선 혼인관계의 지속이 불가능함을 입증하기 위해 상대의 잘못을 부각시킬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뜻이다. 소수의견은 “혼인생활의 파탄을 초래하는 행위는 대체로 복잡 미묘해 그 책임이 당사자 한쪽에 있다고 확정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고도 봤다.
소수의견은 한국의 사회·경제적 여건이 파탄주의를 택해도 될만큼 충분히 성숙했다는 판단도 내놨다. 여성 배우자가 남성 못지않은 경제력을 갖는 경우도 많고, 이혼 자체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변화했다는 것이다. 또 이혼재판에서 여성 몫 재산분할 비율이 늘어난 점 역시 파탄주의 도입을 뒷받침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노현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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