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항할테니 찾지마라” 도망
6억7천만원 빼돌린 80대 구속
대부분 종중재산 관리에 무관심
소수 임원이 독식 ‘횡령’ 빈발
6억7천만원 빼돌린 80대 구속
대부분 종중재산 관리에 무관심
소수 임원이 독식 ‘횡령’ 빈발
한가위나 설 같은 명절이면 여전히 한자리에 모여 차례를 지내고 안부를 확인하는 종중(문중)이 있다. 그러나 한편에선 그 종중의 재산을 자기 것인 양 함부로 쓰고 빼돌리다 처벌받는 사례도 나온다.
서울 구로경찰서는 25일 종중 자금 6억7000만원을 횡령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한 종중의 회장인 이아무개(81)씨를 구속했다. 이씨는 종중 소유의 땅을 담보로 잡히고 3억3000만원을 대출받아 자신의 빚을 갚고, 본인 이름으로 예금해둔 종중 돈 3억4000만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종중 총무에게 “밀항할 테니 찾지 마라. 휴대전화도 버렸으니 전화도 안 된다”는 편지를 남기고 잠적했다가 5개월 만에 경기도 부천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전날 인천지법에서는 종중 건물과 땅을 담보로 맡긴 뒤 1억9000여만원을 개인적으로 사용한 ㄱ(74)씨에게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이 선고되기도 했다.
애초 종중은 가문의 공동재산을 관리하고 화합을 유지하기 위해 조선시대부터 공동선조의 후손끼리 모여 만든 집단을 말한다. 종중 문화는 유교 문화권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만 전해진다. 전남 영암 남평문씨 종중에서 만든 <족계용하기>(族契用下記)처럼, 종중 나름의 관리 규칙을 엄격히 정한 장부도 있다. 1741년부터 해마다 곡식의 출납 등 종중의 재산을 꼼꼼히 기록하고 감사받은 내용까지를 담은 이 책자는 역사·회계학자들로부터 “조선시대의 훌륭한 회계 문화를 보여주는 사료”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족계용하기>와 같이 깐깐한 기준과 내부통제를 갖춘 재산관리는 오늘날 종중에서는 찾기 어렵다. 김석웅 동의대 회계학과 교수는 “오늘날 대부분 종중이 내부 통제도 느슨하고, 기준도 제각각인 학교 동창회 수준의 재산관리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불분명한 소유구조로 인한 일반 종중원의 무관심은 소수 임원의 비위를 부채질한다.
종중 대부분은 후손들끼리 지분을 나누지도 않고 재산분할을 청구할 수도 없는 ‘총유’라는 공동소유형태로 운영된다. 이 때문에 종중재산에서 개인적 이익을 볼 일이 거의 없는 평범한 종중원들은 종중재산 관리에 대한 관심을 잃는다. 일선 경찰서의 한 수사과장은 “경찰서마다 종중 횡령 사건 한두건 없는 곳이 없다. 종중을 만든 1세대야 내 재산도 들어갔으니 종중재산에 관심이 있겠지만 후세로 올수록 자신의 이름이 등기에 올라가 있지 않으면 관심이 없어 소수 사람이 독식하기 쉬운 구조”라고 했다.
김 교수는 “대부분 전답에서 시작한 종중재산은 부동산 가치 상승 등과 맞물려 규모가 커졌지만, 그에 걸맞은 소유나 회계 절차에 대한 규율은 전혀 없는 상태다. 분쟁을 사전적으로 막기 위해서 이런 부분들에 대한 규칙을 만들고 제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방준호 김미향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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