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청탁·허위공문서 근거 없어”
함께 구속된 오명석 전대령도 무죄
“사정수사 성과 내려다 자충수”
합수단 수사에 비판 목소리 나와
함께 구속된 오명석 전대령도 무죄
“사정수사 성과 내려다 자충수”
합수단 수사에 비판 목소리 나와
통영함 납품비리 사건으로 구속기소된 황기철(59·구속 기소) 전 해군참모총장이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방위사업 비리의 상징인 통영함 사건에 연루돼 사임한 군 최고위층 인사가 법원에서 면죄부를 받게 돼,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의 수사가 부실했다는 논란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3부(재판장 현용선)는 5일 통영함에 실릴 미국 방위산업체 하켄코의 음파탐지기(HMS) 관련 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해 28억여원의 국고 손해를 미치게 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배임 등)로 구속기소된 황 전 총장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석방했다. 재판부는 황 전 총장과 함께 구속기소된 오명석(58·예비역 대령) 전 방위사업청 상륙함사업팀장에게도 무죄를 선고하고 풀어줬다.
앞서 합수단은 황 전 총장이 방위사업청 함정사업부장(소장)으로 재직하던 2009년 정옥근(64·구속) 당시 해군참모총장의 해군사관학교 동기생인 김재하(64·예비역 대령)씨의 부탁을 받고 요구성능 기준에 못 미치는 하켄코 장비를 선정한 혐의로 지난 4월 그를 구속기소했다. 금품이 오간 혐의는 없었지만, 본인의 진급 욕심에 윗사람 눈치를 보느라 비리를 묵인했다는 것이었다. 황 전 총장은 지난 2월 통영함 사건에 연루됐다는 논란이 인 뒤 자리에서 물러나 수사를 받아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황 전 총장이 김씨한테 부정한 청탁을 받았음을 인정할 근거가 없으며, 허위 공문서를 작성한다는 범의를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서 “방위사업청에 파견된 군인의 경우 방위사업청장이 근무평정권을 갖고 있어 해군참모총장이 평정에 관여할 수 없게 돼 있다”며 범죄의 동기 역시 부정했다.
재판부는 하켄코 쪽에서 1억여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방위사업청 최낙준(47) 전 중령에게는 징역 7년에 벌금 1억원을 선고했다. 또 해사 동기생인 정 전 총장 등과 친분을 과시하며 하켄코 등 군납업체에서 4억3200만원을 받은 혐의를 사고 있는 김씨에게도 징역 4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황 전 총장이 무죄 판결을 받음에 따라, 비리가 있다며 현직 해군참모총장을 자리에서 끌어내려 구속한 검찰로서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정치적 필요에 의해 테마를 잡고 사정 수사를 벌이면 동티가 나게 마련”이라며 “수사 성과를 내야 하는 검찰이 무리하다 자충수를 둔 격”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0월께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와 국회 시정연설 등에서 방위사업 비리를 이적행위로 규정하자, 검찰은 합수단을 꾸리고 대대적인 수사에 나선 바 있다. 한 차장검사급 검찰 간부는 “수사를 하는 입장에서 부정한 자금 흐름 등 딱 떨어지는 범죄 정황을 잡지 못하면 규정 위반 쪽으로 눈을 돌리게 돼 있다. 문제는 그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허위공문서 작성이나 배임 등은 입증이 어렵고 처벌도 쉽지 않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합수단 수사로 전·현직 해군 장교 25명이 재판에 넘겨진 해군은 애써 할 말을 참는 분위기다. 해군 한 제독은 “주요 무기의 전력화 시기나 예산, 사업 방식이 상급 부서에서 결정되면 실무 종사자들로서는 계획대로 사업을 추진하는 게 지상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며 “업무 추진에 있어서 (법적인) 완결성이 떨어지는 부분도 잘못이긴 하겠으나, 뇌물을 받은 경우와는 구분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합수단은 반박 자료를 내고 “피고인의 변명만 받아줬다”며 재판부를 비판했다. 합수단은 “방위사업 관리규정 등 기본 절차를 지키지 않아 국방력에 중대한 손실을 초래한 방위사업비리 주책임자들에게 면죄부를 준 결과에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며 “법정에서 드러난 많은 물적 증거를 제대로 판단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피고인의 변명만 들어준 판결로 판단되므로 항소장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노현웅 기자, 박병수 선임기자 golok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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