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얼굴’이 개막한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노고산동 이한열기념관에서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이 특별전은 11월30일까지 계속된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와이에이치(YH)무역 여성 노동자 김경숙씨는 회사의 일방적인 공장 폐업에 반대하며 1979년 8월9일 신민당 당사 농성에 들어갔다. 이틀 뒤 김씨는 경찰의 강제진압 과정에서 21살 짧은 생을 마쳤다.
김씨의 흔적을 찾아다닌 성효숙 작가는 7일부터 서울 마포구 이한열기념관에서 시작한 ‘보고 싶은 얼굴’ 기획특별전(11월30일까지)에 멸종위기종인 혹고니를 안고 있는 김씨의 모습과 함께 20~60대 여성 노동자·활동가를 그린 나무판을 걸었다. 성 작가는 이들의 심장 뛰는 소리를 녹음한 뒤 스피커를 통해 관객이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성 작가는 작품 구상을 위해 최순영 전 민주노동당 의원 등 당시 와이에이치 노동조합에서 김씨와 함께 활동한 동료들을 만났다. 김씨의 일기장과 편지, 생전 사진도 꼼꼼히 살폈다고 한다. “김씨가 농성에 들어가기 직전 어머니에게 쓴 마지막 편지에서 ‘돈 없는 자들의 착한 마음’이라는 표현을 썼다. 그 흔한 말에도 이런 진심이 담길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왈칵 눈물이 났다”고 했다. 성 작가는 “이런 마음이 이어져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생각으로 20대부터 60대까지 노동운동, 환경운동 등을 하는 여성들의 모습과 심장 소리를 모았다”고 했다. 심장 고동 소리를 녹음할 청진기를 구하기 위해 들어간 인천의 한 병원 원장이 당시 김씨가 다녔던 야학의 교사였다는 ‘뭉클한 우연’도 만났다고 한다. 이 청진기는 관객이 자신의 심장 고동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도록 함께 전시됐다.
장유진 작가는 재능교육 교사 노동조합 활동을 하다 45살 나이에 암으로 숨진 고 이지현씨를 작품에 담았다. “투사가 아닌 평범한 내 언니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작품을 만들었다”고 했다. 장 작가 역시 이씨의 부모와 동료들을 만나 이씨의 삶을 더듬었다. 장 작가의 작품은 뜻밖에도 개미가 들끓는 해골에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힌 모습이다. “그의 가장 예쁜 모습을 만들어주고 싶어 웨딩드레스를 입혔지만, 그의 죽음을 통해 우리의 끔찍한 모습을 돌아보자는 취지를 형상화했다”고 했다.
두 사람 외에도 1975년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당한 하재완씨, 시국사건으로 복역한 뒤 1988년 실종된 서울대생 안치웅씨, 1996년 경찰의 집회 진압 과정에서 숨진 연세대생 노수석씨, 2012년 1급 장애로 집 안에 번지는 불길을 보고도 피할 수 없어 죽음을 맞은 장애인권운동가 김주영씨 등 각 시대를 상징하는 희생자들을 주제로 한 작품이 전시된다. 이경란 이한열기념관장은 “작가들이 이들의 삶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만든 작품이다. 관람객도 이들을 멀리 있는 열사라기보다 바로 내 옆에 있는 사람으로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방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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