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이래 최대 사기’ 8년만에 들썩
희대의 사기범 조희팔(58)은 정말 살아있는 걸까? 광범위한 검경 로비 의혹과 중국 밀항, 석연찮은 사망 발표에 이르기까지, 그를 둘러싼 ‘8년 미스터리’가 드러날 수 있을까? 조씨의 핵심 측근 강태용(54)씨가 지난 11일 중국 공안에 붙잡혀 국내 송환을 앞두면서 ‘단군 이래 최대 다단계 사기’로 불리는 이 사건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검찰과 경찰은 추가 비리 연루자가 나올까 전전긍긍하고 있고, 조씨의 은닉재산 규모와 피해자 구제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 조희팔은 누구?
경북 영천에서 태어난 조씨는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했다. 10대 시절부터 돈을 벌기 위해 대구에 터를 잡아 일용직과 장사 등으로 생계를 꾸렸다. 조씨가 다단계 사업에 발을 들인 것은 형 때문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형이 다니던 다단계 회사 에스엠케이(SMK)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2004년 10월 건강용품 대여 회사인 비엠시(BMC)를 차리고 사업을 시작했다. 투자금을 모아 골반교정기, 안마기 등을 사들인 뒤 목욕탕이나 이발소에 빌려주고 대여금을 받았다. 조씨는 한 계좌당 440만원을 투자하면 매일 3만5000원씩 8개월 동안 581만원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32%의 고수익이 보장되는 ‘투자’였다.
수익이 크게 나지 않자 조씨는 새로운 투자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약속한 수익금을 지급했다. 조씨는 회사명을 ‘엘틴’, ‘벤스’ 등으로 바꾸며 10여개 법인을 세웠고 각 법인에 자신의 측근을 대표로 앉히는 방식으로 수사망을 피했다. 하지만 아랫돌을 빼 윗돌을 괴는 방식의 사업은 한계가 뚜렷했다. 수익금 지급이 불가능해지자 조씨는 2008년 10월 도주했다. 검찰은 5년 동안의 피해액을 2조원대로 파악하고 있으나, 피해자들은 6조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피해자 수도 2만~10만명으로 차이가 크다. 법원은 조씨 등의 1심 판결문에서 사기 피해액을 2조5620억원, 피해자를 2만4599명으로 명시했다.
조희팔 정말 죽었나
장례식 동영상 등으로만 사망 발표
중국 골프장·음식점서 목격담 나와 검·경 추가 비리연루자 나올까
로비액 30억은 ‘빙산의 일각’ 가능성
돈받은 전직 경찰 13일 중국서 체포 피해자수 최대 10만명
피해자쪽 추산 피해액 6조원 달해
은닉 1500억이상 예상…구제 관심 ■ 밀항부터 사망까지 의혹의 연속
조씨는 지명수배에도 불구하고 2008년 12월9일 중국 밀항에 성공했다. 해경은 조씨의 밀항을 도운 양식업자 박아무개씨의 제보를 받고도 그를 체포하지 못했다. 해경은 당시 “밀항자의 신원을 확인하지 못해 조씨인지 몰랐다”고 밝혔다. 하지만 제보를 받고 체포에 실패한 것을 두고 해경 안에 조씨를 비호하는 세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흐지부지됐던 수사가 다시 시작된 것은 2012년이었다. 경찰은 2012년 2월 조씨의 공범인 황아무개(57)씨가 자수하고, 최아무개(58) 등이 중국 공안에 체포되자 재수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경찰이 2012년 5월 조씨의 중국 사망진단서, 조씨 가족들이 보관하고 있던 장례식 동영상 등을 근거로 ‘조씨가 2011년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사망했다’고 발표한 뒤 수사는 힘을 잃었다. 올해 초 ‘정윤회씨 국정개입 문건’ 수사에서 청와대 문건을 유출한 혐의로 구속된 박관천 전 경정(당시 지능범죄수사대장)이 내부의 신중론에도 불구하고 사망 발표를 주도했다. 의혹은 가시지 않았다. 조씨의 사망 사실이 재수사가 시작되자 발표된 것부터 의심스러운 일이었다. 경찰은 디엔에이(DNA) 대조를 위해 조씨의 가족들로부터 조씨의 뼛조각을 받아 조사를 벌였지만, 화장 과정에서 고열로 디엔에이가 모두 파괴된 상태였다. 사망의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의혹이 계속되자 검경은 조씨가 살아있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 검경 ‘나 떨고 있니?’
조씨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조씨와 그의 측근들이 수십억원을 검찰과 경찰에 뿌린 사실이 드러났다. 수사 결과 조씨와 그의 측근들은 검경에 30억원 가까운 돈을 뿌린 것으로 확인됐다. 김광준(54) 전 서울고검 부장검사가 대표적이다. 김 전 부장검사는 최근 중국에서 체포된 강용태씨한테 수사 무마 대가로 2억7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도 대구지검 서부지청 검찰수사관 출신의 오아무개(54)씨는 강씨한테 15억8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경찰도 검찰 못지않았다. 조씨의 밀항 직전인 2008년 10월 대구지방경찰청 강력계장으로 있던 권아무개(51) 전 총경은 조씨에게서 9억원을 받은 혐의로, 대구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서 근무하던 김아무개(49) 전 경위는 1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조씨를 잡으러 2009년 중국으로 건너갔다가 골프접대를 받고 돌아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아무개(40) 전 경사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정 전 경사는 2007년 강씨한테서 1억원을 받은 혐의로 또다시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강씨의 검거 소식을 듣고 13일 중국으로 도주했지만 경찰에 붙잡혀 당일 한국으로 돌아와 구치소에 수감됐다.
현재까지 확인된 30억원의 로비자금은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강태용씨는 앞선 로비사건에서 돈 전달의 핵심적인 구실을 했고, 조씨의 ‘오른팔’로 다단계 사업의 재무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수사 과정에서 정·관계 로비 사실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강씨의 국내 송환으로 조씨를 비호한 세력의 실체가 드러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피해자 구제는?
현재까지 수사기관이 찾아낸 조씨의 은닉재산은 1200억원 규모다. 이 가운데 710억원은 조씨의 재산을 숨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현아무개(53)씨가 피해자 구제 명목으로 법원에 공탁했다. 2010년 조씨 등을 상대로 먼저 소송을 내 대법원에서 피해금액을 확정받은 280여명이 지난해 나머지 피해자 1만6000여명을 상대로 공탁금을 먼저 가져가겠다는 소송을 냈다.
조씨의 은닉재산이 추가로 나오더라도 국고로 환수될지 피해자들에게 돌아갈지는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조희팔 사건 피해자 모임인 ‘바른가정경제실천을 위한 시민연대’(바실련)의 김상전 대표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강태용씨의 검거로 조씨의 은닉재산이 1500억원 이상 더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이 돈이 피해자들에게 지급될지는 알 수 없다. 관련 법을 만들어 피해자 구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또 “조씨 밀항을 방조하고 수년간 소재조차 파악하지 못한 정부에 책임을 묻기 위해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환봉 기자 bonge@hani.co.kr
최소 4조원에 이르는 다단계 사기를 벌인 조희팔은 수시기관의 묵인과 비호 아래 중국까지 도주하는 데 성공했다. 그나마 재산을 탕진한 피해자들의 모임과 언론의 문제제기가 없었더라면 총체적 국가비리의 일부조차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자료사진
장례식 동영상 등으로만 사망 발표
중국 골프장·음식점서 목격담 나와 검·경 추가 비리연루자 나올까
로비액 30억은 ‘빙산의 일각’ 가능성
돈받은 전직 경찰 13일 중국서 체포 피해자수 최대 10만명
피해자쪽 추산 피해액 6조원 달해
은닉 1500억이상 예상…구제 관심 ■ 밀항부터 사망까지 의혹의 연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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