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복지 사전 승인’ 적용하자
지자체장·의원 모여 대책위 꾸려
횡성 보청기·대구 장애인 보조비 등
지자체 단독사업 수행 어려워져
지자체장·의원 모여 대책위 꾸려
횡성 보청기·대구 장애인 보조비 등
지자체 단독사업 수행 어려워져
‘신규 복지사업에 대한 중앙정부의 사전 승인’을 공식화하는 등 ‘복지 자치’에 대한 통제권을 급속도로 강화하고 있는 중앙정부에 지방정부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일부 자치단체장과 국회의원 등으로 구성된 ‘전국복지수호공동대책위’는 1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지방정부가 주민들에게 필요한 사회보장 사무를 처리하는 것은 본질적이고 고유한 임무다.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를 말살하고 장악하기 위해 총출동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최근 정부가 기초자치단체에 ‘중복사업 일제정비 지침’을 내린 데 대해서도 “지방정부의 복지정책에 대해 승인권을 행사하려는 것”이라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최근 자치단체의 복지사업에 대해 사실상의 ‘사전 승인제’를 적용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한겨레> 10월13일치 9면) 보건복지부는 경기도 성남시가 추진중인 공공산후조리원 사업에 대해 “사회보장제도를 신설·변경할 때 (중앙정부와) 협의”하도록 한 사회보장기본법 규정을 근거로 ‘불수용’을 통보했고, 법제처는 해당 규정의 ‘협의’가 ‘동의’라고 유권해석했다. 또 행정자치부는 ‘협의 없이 시행된 사회보장사업의 예산만큼 교부세를 감액한다’는 내용의 지방교부세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정부의 이런 조처대로라면, 지자체가 단독으로 시행하는 복지사업은 예외 없이 규정 위반이고, 재정적 불이익까지 감수해야 한다.
정부는 ‘협의’ 기준이 제도의 통일성과 지역간 형평성에 맞는지, 기존 제도와의 유사·중복은 없는지 등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협의 과정에서 전국 81건 사업(중앙부처 포함) 가운데 33건(40.7%)만 수용되고, 19건은 불수용됐다. 5건은 권고, 16건은 추가 협의, 2건은 자료 보완, 6건은 반려 등으로 분류됐다. 이는 2013년 전체 61건 가운데 42건(68.9%)이 수용된 것과도 차이가 크다.
강원도 횡성군은 지난해 청각장애 저소득층 노인에게 보청기 구입비를 지원하려다 가로막혔다. 대부분 가족 없이 혼자 사는 65살 이상 청각장애인 28명에게 150만원 정도를 지급하려던 계획이다.
광주시는 지난해 9월 복지부와 사전 협의를 하지 않고 중증장애인 24시간 활동보조비 지원을 시작했다. 시 관계자는 “대구시가 3명의 중증장애인 활동보조비를 지원하다가 복지부에 협의했더니 중단하라 했다고 들었다. 우리도 이 사업을 사전 협의하면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시가 2012년부터 운영해온 ‘보호자 없는 병원’은 사회보장기본법이 시행되기 전이라 중앙정부와 협의 대상이 아니었으나, 2013년 법 시행 뒤 추진된 다른 지자체의 ‘보호자 없는 병원’ 사업 2건의 경우 1건은 한시적 사업이라는 이유로 ‘수용’되고, 다른 1건은 “중앙 유사사업과의 중복 수급 방지 방안”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추가 협의’ 결정이 내려졌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지자체 역점 사업에 대해 정부가 어떤 이유에서건 반대하거나 계속 ‘추가 협의’로 분류하면 진척시킬 수가 없게 된다”고 말했다.
전국복지수호공대위에 참여한 이재명 성남시장은 <한겨레>에 “부정부패·예산낭비·세금탈루를 막아 마련한 돈으로 서민복지 정책을 시행하겠다는데 박근혜 정부는 복지부와 법제처, 행자부까지 동원해 주민 복지를 방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복지사업 방해’와 관련한 특위를 꾸리고, 당 소속 기초단체장들과 규탄대회를 열기로 했다.
임인택 김기성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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